“북한 탈출자 잔혹한 처형”/증언 잇달아/화형 효과없자 현장총살도

입력
1994.08.25 00:00

◎탈북자 중·러에 2만2천여명/한국 「북국적」추방땐 즉시 송환/“코뚜레 꿰여 끌려가는것 목격” 북한당국은 북한 탈출자들을 끌고가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에 머물고 있는 중국 교포들에 의하면 북한은 한국에서 추방된 북한 국적자들이 중국 천진·위해항등에 도착하는 즉시 중국 공안당국에서 신병을 넘겨 받아 북한으로 끌고 가 처벌한다. 중국측은 북한 탈출자들을 강제송환토록 하는 북한과의 협약에 따라 이들을 북한측에 인계하고 있는데 한국 밀입국자들 뿐 아니라 일반 탈출자들도 엄하게 다스린다.

 북한측이 탈출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확인된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 연변대학에서 6월말까지 독일어를 강의한 국제사면위원회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장 허창수신부(53·독일인)는 24일 『수많은 북한 탈출자들이 중국 러시아등에서 숨어 지내다 북한으로 끌려가 처형되고 있다』고 밝혔다.

 성베네딕트회 소속의 허신부는 『지난해 12월 북한을 탈출한 박철수씨(28)를 한국 공관에 데려갔으나 면담조차 거절당했다』며 『박씨는 며칠 뒤 중국경찰에 의해 북한측에 넘겨져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두만강 국경다리에서 탈출자를 넘겨 받은 북한 경찰이 이들의 코를 코뚜레처럼 꿰어 끌고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참혹한 증언을 중국 공안당국자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8월초 연해주의 한인 동포 이동실태를 현지조사한 중국노동자센터 고문 이광규교수(서울대인류학과)는 『북한은 지난해 검거된 탈출자들중 상당수를 공개 화형시키다가 줄어들 기미가 없자 탈출 현장에서 총살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한층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중국 요령성 심양시에서 온 교포 승용준씨(39)는 『북한으로 끌려가던 탈출자가 잔혹한 처형이 두려워 압록강 철교를 지나던 기차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허신부도 『박씨등 북한 탈출자들은 가혹한 처벌이 두려워 모두 「체포되면 차라리 자살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하면서 『한국정부는 탈출 북한동포들을 사지에 방치하는 무책임한 자세에서 벗어나 구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탈출자들이 늘자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연변지역의 공안 기관원들을 크게 늘려 탈북자 및 조선족들의 동태 감시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지 동포들에 의하면 북한 탈출자는 갈수록 급증, 현재 중국과 러시아 극동지방을 합쳐 2만2천여명의 탈북자들이 남한입국 기회를 찾으며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교수는 『최근에는 국경 경비병마저 총을 버리고 탈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이교수는 이들중 중국 교포로 위장해 국내에 입국, 불법체류하고 있는 숫자에 대해 『불법체류 중국교포들을 돕는 「중국노동자센터」에서 직접 만나 상담해 준 북한 국적자만도 6명』이라며 『불법체류중인 중국교포 2만8천명중 북한 국적자는 적어도 1%, 2백80명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전준호·장학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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