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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대하소설 「토지」완료 박경리씨(한국인터뷰)

입력
1994.08.18 00:00

◎“시원함보다 어리벙벙 할뿐”/「생명주의」바탕 도도한 민족삶 그려/영웅없이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광복절에 탈고 묘한인연… 원주서 평범히 살고 있어요□대담 백우영 문화1부장

 박경리씨가 15일 새벽2시에 「토지」의 집필을 완료했다. 지난 69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해서 25년만에 완성한 「토지」로 인해 우리 문학은 규모에서나 민족과 종교, 인간애 등을 아우른 주제·내용면에서 가장 소설다운 소설을 가지게 됐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집필 도중 7개 매체를 옮겨가며 연재했고 4개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으며, 영화와 2개의 TV드라마로 방영된 사실만으로도 「토지」는 문단사적인 사건이었고 작가에 거는 문학적 기대는 지대했다. 백우영문화1부장이 강원 원주에 머물며 생애를 건 집념과 열정으로 문학적 대업을 이룬 노작가를 만나 보았다.【편집자주】

 ―「토지」를 끝마치셨습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실감이 나지 않고 어리벙벙하네요. 시원하다거나 허탈하다는 감정은 없습니다. 세상만사에 끝이 있겠어요. 물줄기처럼 한없이 마냥 흘러가는 것이지요. 지금 내 마음도 그렇습니다』

 ―언제 탈고하셨습니까. 마지막  부분은 어떻게 처리하셨는지요.

 『8월15일 새벽2시에 원고지 12장으로 끝마쳤습니다. 소설의 대미가 1945년 8월15일 해방의 현장인데 묘하게 인연이 맞았네요. 서희와 수양딸 양현의 소리 없는 사슬이 풀리고 장연학이 모자와 두루마기도 벗어던진 채 만세를 부르는 그런 장면들입니다』

 ―선생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명에 연민이 없이는 글을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대하소설 「토지」의 사상적 기조와 한 소설을 오랫동안 이끈 동인은 무엇입니까.

 『모든 대상에 개념을 붙여서 정의를 내리면 본 뜻이 상실되고 부정확해지지만 굳이 한마디로 하자면 생명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은 모순으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탄생과 죽음, 성장과 도태, 밝음과 어둠, 선과 악, 그런 상충적 요소들 말입니다. 그래서 비극이 있고 한이 생기고 그런 상반되는 것들이 섞여 강물처럼 생명은 흘러갑니다. 나는 신을 생명의 본체로 여깁니다. 「토지」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핍박속에 견뎌낸 우리민족의 딱한 사정과 생명을 작가의 직관력으로 담은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도태되는 부분, 그것을 돌봐주고 길러주려는 연민으로 「토지」는 지속됐습니다. 논에 조금이라도 물을 더 뿌리고자 하는 농부의 마음같은 것입니다. 작중 인물들이 많지만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고 싶은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서 창조됩니다. 그래서 「토지」에는 영웅이 없고 하나하나가 그 장면에서는 주인공입니다. 애초에 틀을 짜놓지도 않았어요』

 ―올해는 동학전쟁 1백주년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첫 부분을 비롯해 동학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생명사상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동학은 끝에서도 언급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에서 보이듯이 동학에는 수천년간 축적된 한국인의 정서적·사상적·문화적 특성이 집약돼 있습니다. 샤머니즘이나 화랑도까지 갈 수도 있겠지요. 전에 학생들과 얘기할 때 왜 운동논리를 남미권 등 외국에서 찾으려 하느냐고 한 적이 있는데요, 사람과 하늘과 땅이 모두 함께 하는 자연이라는 고귀한 생명 사상이 우리에게는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근대의 외국유학생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자들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서양문화의 씨앗 하나를 갖고 들어와 뿌리는 대신 우리가 면면이 키운 문화의 거목을 잘라냈습니다』

 ―주인공 서희가 실천해 내는 소설적 또는 역사적 임무랄까 역할은 무엇입니까. 특히 서희를 현명하고 무척 억척스런 여성으로 독자들은 받아들이고 그것이 선생의 여성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서희의 삶도 결국 생명의 변화 양상을 일대기로 보인 것입니다. 가문을 지키려는 서희의 노력은 민족적 삶의 습관과 본능의 표현입니다. 기계처럼 한 순간에 정지되는 것이 아니죠. 이것이 확대되면 민족주의이고 더 나아가면 인류주의일 것입니다. 서희는 존엄성을 빼앗긴 그 시대의 한 인물이지 여권이나 여성의 한 전형으로 삼겠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여권이 강조돼서는 결코 남녀가 평등해지지 않습니다. 그전에 인권을 이야기해야죠』

 ―「토지」는 대작이니만큼 집필 기록이 있을텐데요.

 『글에 전념하느라 많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생략하고 지내서 잘 기억은 못하겠어요. 인물 3백∼4백명, 69년 현대문학 게재부터 25년 집필, 원고지 4만장 가량, 그 정도 같네요』

 ―타협을 모르는 결벽성은 선생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 같은데 「토지」에서는 어떻게 구현되고 있습니까. 「토삼뿌리 같이 혼자 살끼라」고 하셨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글로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말씀이 그 동안의 삶에 어떻게 부합합니까. 그리고 그런 정신은 「토지」에도 투영된 것 같은데요.

 『타고난 감각이 예민해서 청탁의 혼합을 못견디는 이기주의적 성격인데요. 소설속의 최치수가 그런 면을 약간 반영하고 있어요. 부정적으로 그렸지요. 그러나 나는 이런 스타일로 살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선생이 80년부터 원주에서 사시면서 만년의 고향으로 애정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김지하씨는 사위이지요. 주변사람들 얘기를 해주십쇼.

 『처음 이사왔을 때는 잘 모르는데다 내가 시간 안 뺏기려고 소외를 자초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처럼 똑같이 고추 기르고 일하며 평범히 사니까 이젠 아주 좋아들 해주는 것같아요. 나나 사위는 원래 깐깐한 편이고 딸애가 제일 의젓하지요. 지금은 사위도 많이 인간적으로 변했대요』

 ―영향을 받았던 국내외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도 해주십쇼.

 『나는 토종이라 외국문학에서 영향을 받을 수는 없었어요. 20세 때까지 한글을 몰랐기 때문에 그럴 여건도 못 됐구요. 다만 몸에 밴 경상도 사투리가 기둥 역할을 해서 두만강변이나 전라도 사투리도 유리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감각적인 기억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경지로 치면 도스토예프스키,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포크너, 토머스 울프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후배문인들은 생명에 대한 연민을 가져야 하고 자기 자신에겐 무자비해야 합니다. 특히 상업주의나 기능에 물들지 말아야 하며 나르시시즘은 문학성의 장애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기준이 허물어지고 리얼리즘에 손상이 되니까요』

 ―장시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정리=김병찬기자】

◎박경리씨 연보

▲26년 경남 충무 명정리에서 박수영의 장녀로 출생.

 ▲46년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김행도와 결혼.

 ▲50년 6·25전쟁 중 부군이 납북됨.

 ▲55년 단편 「계산」, 56년 단편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돼 등단.

 ▲69년 「현대문학」에 대하소설 「토지」 1부 연재 시작. 이후 「토지」는 「문학사상」 「문화일보」등으로 지면을 옮기며 5부까지 연재됨.

 ▲73년 「토지」1부를 문학사상사에서 출판. 이후 삼성출판사, 지식산업사로 출판사를 옮겨 4부까지 출간됨. 

 ▲74년 김지미 주연의 영화 「토지」 개봉. 79∼80년 한혜숙 주연으로 KBS에서 「토지」방영. 87∼89년 최수지 주연으로 KBS에서 다시 「토지」 방영.

 ▲80년 원주에 정착.

 ▲94년 프랑스에서 「토지」1부 발간(불어명 LA TERRE·민희식 번역·벨퐁간).

 ▲8월15일 전체 5부로 「토지」집필 완료.

 ▲9월 중 전체 5부 16권으로 완간예정(솔간).

 저서=▲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가을에 온 여인」등. ▲시집 「못 떠나는 배」. ▲수필집 「기다리는 불안」 「Q씨에게」 「원주통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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