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임금 안 떼이게” 요청, 단칼에 거부한 지자체는?

입력
2024.06.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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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61>16개 지자체에 물었더니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된 상황입니다. 한국일보는 중간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합니다.


세종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 연합뉴스

세종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 연합뉴스

이전에 경기도의 아파트 경비·청소 노동자 임금 중간착취 방지와 고용 안정(몇 개월 아닌 1년 이상 근로계약) 노력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엔 다른 16개 광역 지자체에도 관련 제도 도입 계획이 있는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질의를 했는데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16개 광역 지자체 정보공개 청구 내용

경기도의 공동주택(아파트)관리규약준칙에 포함된 조항입니다.
①관리주체(관리사무소장 등)는 경비·청소 등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용역비 청구 시 제출한 임금내역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②관리주체는 용역내용이 산출내역서와 다르게 제공되었을 경우에는 용역비를 정산한 후 지급하여야 한다. 이 경우 퇴직적립금, 연차수당, 4대 보험 등은 기성대가 및 준공대가 지급 시 용역업체가 지급사유를 입증한 경우에만 지급하여야 한다.
③용역의 안정적인 수행과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고려하여 근로계약을 제8조(○년간)에서 정하는 기간 또는 1년 이상의 기간으로 체결하도록 협조한다.

위와 같은 규정이 없다면, 향후 준칙에 포함시킬 계획이 있는지, 만약 포함시킬 계획이 없다면 그 이유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단정적으로 거부한 세종시

세종시는 3가지 조항 모두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죠. 세종시의 답변은 “질의하신 내용은 개별 계약조건 및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에 따르는 내용으로, 공동주택관리규약준칙에서 정할 계획 없음”이라는 내용이 전문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답변을 보내온 세종시 주택과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서 더 자세히 물었습니다.

기자: 근로기준법 어디 규정을 말씀하시는지.

답변: “그건 모르겠다.”

기자: 하면 안 되는 이유(준칙에 중간착취 방지 조항을 넣으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가.

답변: “우리 준칙에서는 그 부분을 다루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기자: 다른 지자체는 하는 곳들이 있는데, 그냥 안 하실 계획인가.

답변: “네네.”

기자: 이건 혼자 판단하신 건지.

답변: “준칙 담당하는 전문위원과 협의한 내용이다.”

기자: 필요 없다고 보시는 건가.

답변: “민원이나 그런 게 없다. 피부에 와닿는 게 없다.”

기자: 사실 현장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지자체에 민원 전화 안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답변: “그분들이 전화를 못 해서 안 하는 거 아니다.”

기자: 세종시의 경우, 경비원이나 청소원들의 계약 기간이 대부분 1년 이상으로 돼 있는 건가. 파악을 해보셨나.

답변: “저희가 관여하지 않는다.”

기자: 실태 파악을 해본 건 따로 없으신 건가.

답변: “네.”

대전의 모범적인 준칙, 그런데···

경남·대전·전북의 준칙엔 “용역원의 임금을 지급함에 어떠한 명목으로도 갑(아파트 관리주체)과 을(용역업체)의 쌍방 합의한 노임 이하로 지급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습니다. 또 “갑은 을의 용역제공 내용을 감독하여 용역시간 단축, 복리후생 목적의 비용(식비, 피복비, 명절선물비 등) 미지급 등 계약조건을 위반하였거나 배상책임이 있는 경우, 해당 금액을 계약금액 중에서 환수 또는 공제 조치할 수 있으며 을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엄격히 규정했죠.

세 지자체는 모두 ②퇴직금 등 정산지급 조항이 마련돼 있고요. 경남·전북에는 ③용역 노동자 1년 이상 근로계약 조항이 없었는데, 대전은 해당 조항(용역 근로 1년 이상)까지 마련돼 있어서, 더 모범적인 준칙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실제 이들 지자체도 ①임금 등이 떼이지 않고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 아파트 관리주체에서 확인하도록 하는 조항은 없었습니다. 전북은 포함되지 않은 조항들에 대해 “향후 준칙 개정 추진할 시 검토하도록 하겠음”이라고 고마운 답변도 주었지요.

하지만 대전시는 “관리주체가 용역사업자의 근로자에 대한 임금내역을 확인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이 됨”이라고 거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경비나 청소 노동자가 월급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과연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못 할 일일까요. 답변을 준 대전시 주택정책과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입니다.

기자: 개인정보라도 당사자 동의를 받으면 임금내역 확인 가능하지 않나.

답변: “만약에 기자님 거(임금)를 오픈하라고 하면 다 오픈하시겠나.”

기자: 원청이 주는 월급이나 수당을 용역업체가 떼어먹는지 알아보는 거고, 용역 노동자 입장에서라면 오픈 못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답변: “관리회사가 ‘당신네 우리 단지에 와가지고 일을 하니까, 급여명세서 좀 줘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기자: 동의를 받으면 되고, 싫다고 하면 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물어보는 것이 개인정보법 위반은 아니다.

답변: “나중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다가 저기 관리사무소에서 개인정보(임금명세서)를 달라고 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줬다가 고소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기자: 모든 게 동의 여부와 관련 있지 않나. 3자한테 제공할 때도 동의하냐, 아니냐를 체크할 수 있듯이.

답변: (또다시) “기자님! 기자님의 급여 명세를 저한테 오픈할 수 있나. 제가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용역업체 직원들 급여 안 물어본다.”

원청이 정한 임금이나 수당을 용역업체가 떼어먹지 않고 노동자에게 지급하는지 급여를 확인해보는 것을, 공무원이 기자 월급 알아보는 것과 같은 전혀 상관없는 사례에 계속 빗대면서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노동자에게 임금을 확인하지 않고, 준칙대로 노임이 제대로 지급되는지 어떻게 관리한다는 것일까요.

울산 “노동자 삶의 질 저하 안 되게 반영 노력”

중간착취 방지 등을 위한 위의 3가지 규정 중 2가지를 시행하고 있다고 답한 지자체는 서울시였습니다. 서울시 준칙에는 ②퇴직금 등 정산지급 조항 ③단기근로계약(1년 미만)의 근절과 기존 근로자의 고용승계를 위한 노력 조항이 있습니다. 하지만 ①임금 내역 확인에 대해선 향후 반영 계획 언급이 없었습니다.

강원·경북·대구·울산·제주·충남은 ②퇴직금 등 정산지급 조항이 현재 준칙에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 조항도 포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별도로 강원·제주 준칙에는 대전·경남처럼 ‘쌍방 합의한 노임 이하로 지급 금지’ 조항도 있었지요.

“향후 준칙 개정 시 1년 이상 근로기간도 반영 여부를 검토할 예정”(강원), “미포함 사항에 대해 준칙 개정 시 필요성 확인을 거쳐 반영 여부를 검토”(제주), “관련 법령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준칙 개정 시 추진할 예정”(경북), “관리주체가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내역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조항은 2024년 관리규약준칙 개정 사항에 포함할 예정”(충남), “우리 시는 청소, 경비와 같은 용역 노동자가 인건비 등이 체불되거나 일부 지급되는 등으로 삶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다음 준칙 개정 시 관련 법령 등을 검토하여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울산)이라고 답했습니다. 대구시도 “다음 준칙 개정 때 반영 검토”라고 짧게 답변을 주었습니다.

다만, 광주·인천도 퇴직금 등 정산지급 규정만 운영하고 있었는데, 향후 다른 조항을 도입할 계획인지 여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현재 시행 중인 준칙만 보내왔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남 “관련 조항들 없지만, 향후 의견 수렴”

현재 ①~③과 비슷한 조항이 하나도 없는 지자체는 부산·전남·충북입니다. 전남은 “현재 전라남도 준칙에는 해당 조항이 없으며, 향후 내부 검토 및 관련 기관 의견수렴 등을 통해 개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임을 알려드림”이라고 답했고요. 충북은 “질의하신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준칙 내 관련 내용과 동일한 조항은 현재 부재한 상황”이라면서도 “민원 사항이나 상위법 개정사항, 권익위 권고사항 등을 반영하여 준칙을 개정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원칙만 건조하게 밝혔습니다.

부산은 준칙이 아니라 조례를 중심으로 아파트 근로자 보호를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부산시는 “공동주택 노동자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하여 용역업체 고용노동자에 대한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는 규정되어 있으나, 준칙상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재 준칙 개정 계획은 없으나, 추후 공동주택 용역업체 노동자의 권리보호 및 고용불안해소를 위해 적극 검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부산시의 조례(공동주택 노동자 인권 증진에 관한 조례)를 보면, 임금 중간착취 방지나 계약기간 등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시장의 포괄적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수립의무 등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조례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긴 힘들어 보입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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