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후 정치 입문할 계획이 있느냐.”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사의를 밝힌 뒤, 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전날 대구 방문에서도 그는 같은 물음에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다”라고만 했다. 하지만 시점이 문제일 뿐, 윤 총장이 결국엔 정치권에 발을 들일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말 징계 국면 때에도 총장직을 사수했던 그가 검찰 조직을 떠나 본격적으로 ‘장외전’에 뛰어든다면 ‘서울 여의도’가 무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이날 “제가 지금까지 해 왔듯이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직 명분은 여권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립 반대에 뒀지만, 사퇴 이후에도 ‘공적 역할’을 하겠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정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퇴임 이후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이후 그가 정계 진출 가능성을 대외적으로 부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실제로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야권의 차기 대선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윤 총장이 이제 자연스럽게 정계 입문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사퇴 시점’도 이미 짜인 스케줄에 따라 정했을 것이란 분석마저 나온다. 지난 2일 공개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는 중수청 설치 반대를 위해 “총장직을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했다. 이튿날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를 방문한 현장은 마치 정치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이날 사의 표명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얘기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미 작년부터 야권에선 윤 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됐고, 윤 총장 입장에서도 ‘더 늦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국회에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윤석열 출마 방지법’이 계류돼 있는 점도 사퇴 시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해당 법안은 ‘검사가 퇴직 후 1년이 지나지 않으면 대선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대선은 3월 9일로 예정돼 있다.
초미의 관심사는 그의 정계 진출 선언 시점이다. 이제 막 현직 검찰총장 신분을 벗어난 만큼, 곧바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면 비판이 쏟아질 공산이 크다. 당분간은 ‘야인 생활’을 하며 정치권 등판의 ‘적기’를 노릴 것이란 얘기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당장 정치 행보에 나서기보단 4ㆍ7 보궐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 기존 정당에 합류해 (작년보다) 떨어졌던 지지율을 회복해 몸값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성정당에 몸 담는 대신 ‘제3의 정치세력’ 구축에 나설지도 관전 포인트다. 27년간 검사 외길을 걸었던 윤 총장은 “정무감각이 없다”고 자평하고 있다. 보수정당 합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독자세력 규합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 인맥은 상당히 넓다. 기성 정치인들도 구체적 청사진을 갖고 윤 총장의 정계 진출을 돕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가 보수세력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