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된 살상게임을 현실에서 재연했다.”
검찰이 11일 밝힌 서울 신림동 흉기난동범 조선(33)의 범행 방식이다. 검찰 수사 결과, 조씨는 범행 8개월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잠잘 때를 제외한 대부분 시간을 온라인 게임과 게임 동영상 시청에 할애했다. 여러 번 직장을 그만두고 연애에 실패하는 등 좌절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원래 즐겨했던 ‘1인칭 슈팅게임’(FPS)에 몰두했다고 한다. FPS는 유저(이용자)가 게임 캐릭터로 분해 살상무기로 상대를 해치는 게임이다.
흉기난동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같은 달 게임 커뮤니티에서 특정 유튜버를 비방한 혐의(모욕)로 고소당한 사건이었다. 검찰은 이 일이 범행의 ‘트리거(방아쇠)’가 됐다고 판단했다. 급기야 범행 나흘 전인 지난달 17일엔 경찰의 출석 요구서까지 받았다. 실제 조씨는 “범행 당시 고소인을 떠올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검찰 전문수사자문위원회는 “피의자는 그나마 소속감이 있던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고소를 당하자, 소년원 시절 사회로부터 격리된 기억이 떠오르며 심한 압박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조씨는 결국 분노 발산을 위해 현실세계에서 게임을 실행했다. 사건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에 나온 조씨의 행적은 FPS 게임을 빼닮았다. 그는 110m 구간 골목에서 약 2분 동안 피해자 4명(1명 살해)을 상대로 40차례 넘게 흉기를 휘둘렀는데, 게임 속 캐릭터처럼 가벼운 뜀걸음으로 다가갔다. 피해자의 얼굴과 뒷목 등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부위를 주로 노린 것도 게임 방법과 유사했다. 젊은 남성만 목표로 한 수법 역시 흔하지 않은 유형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범행 방식은 게임을 차용했지만, 준비는 치밀했다. 범행 전날 휴대폰을 초기화하고 사건 당일 아침 컴퓨터 저장장치를 망치로 깨부수는가 하면, 흉기도 사지 않고 훔쳤다. 여러 전후 상황을 종합해 검찰이 내린 결론은 “게임중독 상태에서 저지른 계획적 ‘이상동기(묻지마) 범죄’”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김수민)는 이날 조씨를 살인 및 살인미수, 절도, 사기, 모욕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가 사이코패스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모방범죄 등 사회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 만큼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살인예고’ 게시물 작성자도 살인예비, 협박 등 혐의로 첫 구속기소했다. 조씨 범행 직후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살인예고 글을 올린 이모(26)씨다. 휴대폰으로 유영철, 이춘재 등 연쇄 살인범을 검색한 사실이 확인돼 살인예비 혐의가 추가 적용됐다.
이날까지 살인예고 글 관련으로 구속된 피의자는 12명이다. 경찰은 협박 게시물 315건을 적발해 작성자 119명을 검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