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를 풍미한 원로가수 현미(85·본명 김명선)가 4일 별세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현미는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으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한 가수를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게 가수 데뷔의 계기가 됐다. 당시 작곡가였던 고(故) 이봉조(1931~1987)가 그를 눈여겨보고 음반 활동을 지원하면서 현미는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1962년 히트곡 '밤안개'로 국민가수로 발돋움했고 이후 이미자, 패티김 등 당대 최고 스타들과 함께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특유의 재즈풍의 힘 있는 허스키 보이스로 '내 사랑아',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왜 사느냐고 묻거든' 등 여러 히트곡을 배출했다. 1981년에는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생전에 현미는 가수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2007년 데뷔 50주년 기자회견에서는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 가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소탈한 면모도 잘 알려져 있다. 고인은 2011년에는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2'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가수 지망생과 후배들을 인간적으로 격려하는 심사평을 남겼고, 2020년 방영됐던 웹예능 '영리한 문제아들'에서 트로트랩을 구사하려는 후배 래퍼를 위해 트로트 선생님으로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 이산가족 고향체험 VR(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해 두 친동생과 60여 년간 이산가족으로 생이별했던 개인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고인은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며 최근까지도 비교적 활발히 방송활동을 했으나 지난해 한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해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오른쪽 발목뼈 수술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현미는 일반인들보다 뼈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으나 수술 후 건강하게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미는 이봉조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뒀다. 가수 원준희는 현미의 둘째 며느리이고 가수 노사연은 현미의 조카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