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2분기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핵심 항목인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 한전은 당초 유가 상승 등을 반영해 kWh(킬로와트시)당 33.9원을 책정한 뒤 상한선 규정에 따라 3.0원만 올리는 안을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동결을 통보했다. 결국 예고됐던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 인상분만 적용돼 내달 전기요금은 kWh당 6.9원 오르게 된다.
정부는 연료비 동결 이유로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의 생활 안정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유와 석탄,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상황을 감안하면 상식과 예상에 어긋난 결정이다. 전기를 만드는 데 드는 원가가 높아지면 전기료도 따라 인상함으로써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기후 변화에도 대응하겠다는 게 연료비연동제의 취지다. 지키지도 않을 제도를 왜 도입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기형적 결정의 배경에는 현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의 전기료 떠넘기기가 작용했다. 당초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는 21일로 예정됐으나 전날 저녁 갑자기 취소됐다. 윤 당선인의 4월 전기요금 동결 공약을 의식한 것 아니냔 해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28일 대통령직인수위가 “현 정부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내놓자 이튿날 곧바로 발표가 나왔다. 6월 지방선거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벌어진 해프닝으로 풀이된다. 인사권은 서로 행사하겠다고 싸우던 신구 권력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폭탄 돌리기를 한 셈이다.
전기요금을 마냥 묶어둘 순 없다. 언젠가 올릴 수밖에 없고 나중엔 그동안 반영하지 못한 인상분까지 더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 조삼모사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전의 적자도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6조 원에 육박했던 영업적자는 올해 20조 원으로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가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전기를 많이 쓴 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전 국민에게 전가하는 건 공정의 위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