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ㆍ말라리아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의 중점 관리 3대 감염병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률(10만 명당 38.8명)은 1위, 사망률은 2위(2020년 기준)로 여전히 ‘결핵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결핵 환자가 여전히 많이 발생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잠복 결핵’ 탓이다. 전 국민 3명 가운데 1명은 몸속에 결핵균을 보유(잠복 결핵)하고 있다. 잠복 결핵은 결핵균에 감염됐지만 실제 결핵이 발병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잠복 결핵은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는 않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발병돼 주위 사람들을 전염시킬 수 있다. 별다른 증상이 없어 결핵균에 감염됐다고 알아채기 어려워 ‘활동성 결핵’으로 발병돼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결핵 검사를 받는 사람이 드물다.
결핵은 공기를 매개로 전파되는 만성 호흡기 감염병이다. 결핵 환자의 비말(飛沫ㆍ침방울) 등에 있는 결핵균이 기침ㆍ재채기를 통해 공기 중에 있다가 다른 사람의 호흡과 함께 폐에 들어가 감염된다.
결핵균은 폐ㆍ콩팥ㆍ신경ㆍ뼈 등 우리 몸속 대부분의 조직이나 장기에서 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폐결핵이다. 결핵 환자 1명이 100명과 접촉하면 30명 정도가 결핵균에 감염된다.
하지만 결핵균에 노출됐다고 모두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대한결핵협회에 따르면 결핵균에 감염된 사람 중 90%의 감염자는 몸속에 결핵균을 가지고 있지만 면역체계에 의해 결핵균이 억제돼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잠복 결핵의 위험성은 평소에는 문제가 전혀 없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활동성 결핵으로 발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잠복 결핵 감염자가 활동성 결핵 환자로 바뀌는 비율은 10% 정도다. 이 중 50%는 1, 2년 내 발병하고 나머지 50%는 평소 언제든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발병한다.
특히 AIDS, 규폐증, 만성콩팥병, 당뇨병 등 기저 질환이 있거나 영양실조 및 저체중 등이라면 결핵에 걸릴 위험이 높기에 빨리 검사를 받아 잠복 결핵 여부를 확인해 조기 치료해야 한다.
활동성 결핵은 흉부 방사선 검사 및 객담(가래)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잠복 결핵이라면 몸속 결핵균 항원에 대한 면역학적 반응을 이용하는 별도 검사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검사법으로 ‘투베르쿨린 피부 반응 검사(TST 검사)’와 ‘인터페론감마 분비 검사(IGRA 검사)가 있다. TST 검사는 결핵균 배양액으로부터 정제한 물질(PPD)을 팔 안쪽 피부에 주사 후 48~72시간에 주사 부위 피부가 단단해지는 정도에 따라 진단한다. 수십 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지만 절차가 번거롭고 BCG 예방접종이나 비결핵성 항상균 감염으로 인해 실제 음성이나 위양성(가짜 양성)으로 나올 수 있으며 체내 검사로 이상 반응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최신 검사법인 IGRA 검사는 TST 검사의 단점을 보완한 혈액검사로 수검자의 결핵균 항원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면역세포에서 분비되는 감마인터페론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결핵균을 막기 위한 면역 사이토카인 ‘인터페론감마’의 분비 정도를 확인해 결핵균 감염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다.
한 번 채혈로 잠복 결핵을 진단할 수 있기에 편의성이 높고 체외 검사이므로 약물 주입으로 인한 이상 반응 위험성도 적다. 또 결핵 예방을 위해 유아기에 필수로 맞는 BCG 백신 영향을 크게 받지 않으므로 정확도가 높다.
이미 미국·유럽 등에서는 IGRA 검사를 우선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IGRA 검사의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넓히고 있다. 또한 지난해 7월부터 잠복 결핵에 건강보험 산정 특례를 적용해 본인 부담 없이 치료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