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년 이전에 현생 인류는 사라질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이다. 하라리는 그 까닭을 인공지능(AI)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호모 사피엔스가 기계와의 결합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에서 찾았다.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인공지능만큼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움을 안겨주는 것은 없다.
지능이란 주어진 데이터를 기초로 적당한 시기에 적절히 일반화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과 동물이 갖는 지능이 자연지능이라면, 이러한 자연지능을 컴퓨터에 실현시키는 정보처리 매커니즘이 인공지능이다.
다보스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 더 넥스트’에서 인공지능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선형 회귀분석에서 의사결정 트리, 베이지안 네트워크, 인공신경망과 진화적 알고리즘까지의 소프트웨어 접근법이 포함된 머신러닝을 의미한다.
최근에 들어와선 딥러닝이라 불리는 심층신경망 학습기법과 이를 가능하게 한 하드웨어의 발전 및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이 미래를 주도할 기술로 각광 받고 있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에 따르면,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무인이동체 산업, 고성능 진단을 기반으로 한 의료산업, 생체인식 기술 및 로봇 기반의 개인 서비스, 그리고 인류 실생활에 밀접한 유통산업에서 획기적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류의 삶과 사회를 크게 바꿔놓았듯,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공지능과 사회의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사회학자 김환석은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네오-러다이즘’이다. 이는 기술적 진보 자체를 반대하는 경향을 말한다. 네오 러다이트들은 현재의 기술이 인류와 자연을 위협하고 결국 파국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산업자본주의를 대신해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 인도의 칩코 운동과 같은 소규모 농업공동체들을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두 번째는 ‘포스트휴머니즘’이다. 포스트휴먼이란 지식과 기술의 변화가 가져온 진화된 인류를 말한다. 이러한 포스트휴먼의 시각에서 벌이는 지적·문화적 운동이 포스트휴머니즘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의 한 흐름이 ‘트랜스휴머니즘’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이란 인간의 지적·신체적·감정적 능력의 향상, 질병과 불필요한 고통의 제거, 인간 수명의 확장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대표적인 사상가다.
세 번째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이다. 이 관점은 해당 기술과 연결된 수많은 인간 및 비인간의 행위에 따라 기술의 사회적 결과가 달라진다고 파악한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에 따르면, 인류의 실제 역사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적 세계관만이 존재했다. 인공지능 기술 역시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돼 만들어진 더 크고 복잡한 하이브리드의 출현을 보여준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 논리다.
네오-러다이즘이 기술 발전에 대해 비관적이라면, 포스트휴머니즘은 낙관적이다. 두 관점 모두 기술이 사회적 결과를 결정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의 문제를 갖고 있다. 김환석이 주장하듯, 인간과 기술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은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견해처럼 다양하고, 따라서 인간은 기술을 대등한 행위자로 간주하며 새로운 공동세계를 일궈가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기술이 낳을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장기적 관점에선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포스트휴먼 시대로 나아갈 가능성을 부정하긴 어렵다.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의 융합시점을 ‘특이점’으로 정의했다. 2045년의 특이점 이후에는 기술이 인간을 추월할 것이라고 그는 예언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의 삶과 사회에 대해선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커즈와일과 슈밥이 말했듯, 과학기술 발전이 선형적 속도를 넘어 기하급수적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한편 단기적 관점에서 2020년대에 인공지능이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다섯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 ‘인공지능 격차’다. 인공지능 기술의 진전이 가져올 결과 중 하나는 산업 간, 기업 간 격차다. 인공지능을 적극 도입한 산업과 기업은 성장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산업과 기업은 정체하거나 후퇴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놓고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둘째,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늘릴 가능성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일자리를 줄일 것이다. 이러한 일자리 감소는 빈부격차 증가로 나타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안된 대안이며, 그 재원으로 로봇세를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셋째, 노동 형태에 미치는 영향이다. 자동화의 진전은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나아가 프로젝트형 근무관계를 강화시킬 것이다. 주목할 것은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경험하는 플렉시블 타임제와 재택근무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넷째,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한편에서 풍부한 데이터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참여와 숙의의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시민의 감시와 통제, 데이터 독점, 여론 조작 등을 강화시킴으로써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다섯째, 윤리적·법적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 간의 관계를 어떻게 명확히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로봇에 법인격을 부여할 것인지 혹은 도덕적 행위자로 볼 것인지의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사고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그 적절한 사례다.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이러한 윤리적·법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OECD 인공지능이사회 권고안을 채택해 인공지능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선언했다. 권고안은 포용성과 지속가능성, 인간가치와 공정성, 투명성과 설명가능성, 강인성과 안전성, 책임성을 일반 원칙으로 내놓았다. 그 가운데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결과를 인간이 통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테크놀로지는 윤리적으로 중립이다. 우리가 그것을 사용할 때 선악이 부여된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정보사회든, 인공지능이든 그 빛과 그늘을 선악의 이분법으로만 파악할 순 없다. 하지만 점점 분명해질 인공지능의 명암을 직시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더 이상 미래의 숙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 현재의 과제라 할 수 있다.
2020년대에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에서 인공지능은 이제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은 인공지능 분야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양질의 데이터 구축 및 관리, 소프트웨어 및 빅데이터에 대한 인식 개선,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 장기적인 로드맵 구축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IT 강국을 넘어 인공지능 강국을 겨냥한 ‘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올 1월 국회는 ‘데이터 3법’이라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데이터 3법은 인공지능 관련 산업에 요구되는 필수적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정보 오·남용과 보안 사고에 대한 우려 또한 주목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2020년대에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국가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인공지능의 도전을 피해갈 순 없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열어갈 세계의 전체상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초지능과 초연결, 자율주행자동차와 로봇공학 등이 열고 있는 것은 분명 새롭고 낯선 세계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깁슨의 또 다른 말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이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불확실하고 질주하는 미래를 그렇다고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과 그 미래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더욱 관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