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자 증세’를 위한 입법에 시동을 걸었다. 기업과 연 소득 40만 달러(약 5억2,0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어 중·저소득층 복지를 적자 없이 지탱한다는 게 구상의 뼈대다. 그러나 정작 실현 가능성에는 관심이 적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11일(현지시간) 2025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대통령 예산안과 더불어 향후 10년간 재정 운용 계획을 공개했다. 대기업과 고소득자들로 하여금 ‘정당한 몫’의 세금을 내도록 만들어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정의 생활비 부담을 줄여 주고 재정 적자도 충당한다는 게 청사진의 핵심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7일 국정연설(연두교서)에서 약속한 대로다.
증세 대상은 일단 기업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21%로 낮춘 법인세율을 28%로 인상하고, 법인세 최저 세율도 15%에서 21%로 높이는 방안이 계획에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뉴햄프셔주(州) 고프스타운 연설에서 “나는 기업에 반대하지 않는 자본주의자”라며 “원하는 만큼 돈을 벌고 공정하게 배분된 세금을 내면 된다”고 말했다.
고소득자·자산가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연간 40만 달러를 넘게 버는 개인이 주식 매매 등으로 이득을 챙긴 경우 39.6%가 세금이고, 연봉이 100만 달러(약 13억 원)보다 많은 기업 임원은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없다. 자산 규모가 1억 달러(약 1,300억 원) 이상인 부유층으로부터는 25%를 ‘부유세’로 받아 낼 필요가 있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 생각이다.
계획대로 되면 앞으로 10년간 세금이 4조9,000억 달러(약 6,425조 원) 더 걷히고 재정 적자는 3조 달러(약 3,934조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정부는 계산한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은 중·저소득층 가구의 세금을 깎고 약값, 주거비, 보육비, 학자금 등을 줄이는 데 쓰이거나, 고령자·장애인 대상 공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회계연도 절반이 지나도록 올해 예산에도 합의하지 못한 의회가 철학이 충돌하는 세법 개정안 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구체성이 떨어지는 구상”이라며 “공화당 유력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및 긴축 재정 기조) 정책과 대조적인 만큼 중·저소득층의 호응을 기대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했을 때도 부유세 통과는 불가능했다고 행정부 관계자가 인정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제안한 7조3,000억 달러(약 9,568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에는 중산층 지원 등 국내용 예산 외에도 중국·러시아 견제 목적 예산이 대거 편성됐다. 예컨대 99억 달러(약 12조9,700억 원)로 증액된 태평양 억제력 이니스티브(PDI), 492억 달러(약 64조4,900억 원)가 배정된 3대 핵전력 현대화 등 국방 예산 사업은 타깃이 중국이다. 우크라이나 지원 등 러시아의 공세 방어 용도로 국무부가 신청한 내년 예산만 15억 달러(약 1조9,600억 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