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대표팀의 체질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신태용(54)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이 낳은 스타라면 스타다. 인도네시아를 무려 17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진출시킨 것도 모자라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안컵 16강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 지도자로 우뚝 섰다.
인도네시아는 이번 대회 조별리그 D조 3위에 올라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 박항서 감독에 의해 동남아시아 축구 강국이 된 베트남을 1-0으로 누르고 이라크(3-1)와 일본(3-1)에 무릎을 꿇어 1승 2패(승점 3)였다. 카타르에서 짐을 싸려던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오만이 키르기스스탄과의 마지막 조별리그 F조 3차전에서 1-1로 비기면서 인도네시아가 수혜를 봤다. 이번 대회는 각 조 상위 1, 2위 12개 팀과 각 조 3위 상위 4개 팀이 16강에 진출하는데, 인도네시아가 A조 3위 중국, F조 3위 오만(이하 승점 2)보다 승점이 앞서면서 사상 첫 토너먼트행을 확정 지었다.
지난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만난 신 감독은 "오만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가 17분 정도 남아 있는데 17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고 16강 진출 확정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오만이 전반 8분 선제골을 넣은 뒤 그대로 경기가 끝날 줄 알고 노심초사했다가, 후반 35분 키르기스스탄의 동점골이 터져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는 "호텔 방에서 그 경기가 끝나자마자 혼자 기뻐하고 있는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문 밖에서 난리가 났더라"며 자신의 방을 찾아온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져 화제가 됐다.
그러나 무엇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신 감독은 무려 4년이 걸렸다. 2020년부터 인도네시아를 맡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그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문화를 존중하며 대표팀 체질 개선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를테면 국가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의 태도부터 바로잡아야 했다. "처음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고 선수들을 소집했는데 몇 명이 안 오는 겁니다. 한 선수의 경우 소속팀에선 분명히 보냈다고 하는데 이틀 동안 연락이 두절된 거예요. 나중에 왜 오지 않았냐고 하니 '몸이 아파서 못 왔다'고 하더군요. 그전부터 늘 그렇게 해왔던 것인데, 제가 부임하면서 시스템을 싹 바꾼 거죠."
이뿐만이 아니었다. 훈련을 위해 정해진 시간까지 운동장에 집합하라고 해도 선수들은 10분, 20분이 지나도 꿈쩍하지 않았다고. 라커룸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느긋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가 행복지수가 높은 편이라 선수들도 굳이 힘든 걸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다"며 "이런 마인드를 바꾸는 게 가장 힘들었다. 결국 선수들이 투지와 패기를 보이면서 아시안컵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감독이 선수들에게 요구한 건 세 가지였다. 그는 "일단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절대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놨다"며 "그리고 자기 잘못을 항상 인정하라고 했다. 인정하고 두 번 다시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 번의 실수는 용납되지만 두 번 실수는 버릇이라고 했다. 그런 것을 이해시키고 바꾸니까 선수들의 생각도 변하더라"고 털어놨다.
신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페인 라리가 등 경기 영상을 보여주며 선수들이 몸이 부서져라 뛰는 이유를 설명했다. 몸을 던져서라도 공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두 번 세 번 주문해도 안 되면 선수를 세워놓고 공을 맞혀가며 스스로 깨닫게 했다.
그래서 신 감독은 조별리그 1차전 이라크전과 16강 호주전이 못내 아쉽다. 이라크전(1-3)에선 선제골을 내줬으나 만회골을 터뜨려 따라잡았다. 하지만 전반 추가시간 이라크의 추가골이 나왔고, 석연치 않은 오프사이드 판정까지 더해져 결국 무릎을 꿇었다. 또한 호주전(0-4)에서도 경기 초반 밀어붙이던 인도네시아가 자책골로 인해 승기를 내주며 무너졌다.
신 감독은 "이라크와 호주가 모두 인도네시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만약 이라크전에서 전반을 1-1로 마쳤다면 후반에 쫓기는 건 이라크였을 거예요. 호주도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의 자책골만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시간에 쫓기게 되면 불안한 건 강팀이지 약팀이 아니거든요. 불안하면 조직적인 움직임이 무너지게 되고, 상대에게 더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 경기에 나서는 게 감독의 일이죠."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은 게 큰 결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아세안축구연맹(AFF)이 아닌 AFC로 나가서 부딪혀 봐야 인도네시아 축구 수준을 알고 부족한 걸 보완해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와 올해 6월까지 계약돼 있다. 지난해 12월 계약이 끝났으나 6개월 연장했던 것. 그래서 오는 3월이면 재계약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다른 곳에서 감독 제안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대회 기간 중에 (제안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6월까지 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신의를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하죠. 아직까진 새로운 도전을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