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긴장 수위를 끌어올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가자 전쟁’의 확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리 세력을 통한 미군 기지 공격, 핵물질 증산 등 10월 초 개전 뒤 잇단 이란의 자극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세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미국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이란이 핵 프로그램 가속화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회원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고농축 우라늄 생산량을 줄이던 이란이 방침을 바꿔 다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며 “약 한 달간 생산된 60% 농축 우라늄 물량은 9㎏”이라고 밝혔다. 9㎏이면 올해 초 생산량이다. 8월쯤 3㎏까지 축소했던 생산량을 복원한 것이다. 통상 60% 농축 우라늄 42㎏가량이면 핵폭탄 1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IAEA의 추정이다.
서방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유럽 관리들은 이란이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면 경제 제재가 강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고, 이스라엘은 이란이 90% 농축 우라늄 생산을 시작할 경우 군사 조치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 WSJ는 전했다.
서방 시각에서 이란의 일탈은 이뿐 아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거의 매일 친(親)이란 무장 세력의 미군 기지 공격이 이어지더니 끝내 사달이 났다. 이라크 북부 아르빌 미군 기지에서 중상자가 발생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 지시로 보복 공습이 이뤄졌다. 확전을 바라지는 않지만 자국 국민과 시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면 좌시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 국방부 입장이다.
WSJ에 따르면, 올봄 미국은 내년에 자국 대선이 있는 만큼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아 달라고 이란을 회유했다. 당시 미국이 60억 달러(약 8조 원) 규모 동결 자금의 해제 등을 대가로 이란에 요구한 조치 중 뼈대가 대리 세력의 역내 미군 기지 공격 중단과 고농축 우라늄 감산이었다. WSJ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이 조용히 기울여 온 외교적 노력이 이란의 무기급 우라늄 증산 결정으로 실패했다”고 논평했다.
미국은 가자 전쟁 초기부터 지역 안보를 강화하려 안간힘을 써 왔다. 가장 강력한 친이란 레바논 민병대 헤즈볼라를 억제하기 위해 지중해 동부에 항공모함 2척과 핵잠수함 1척을 보냈고,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업용 선박에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다국적 해군 함대를 확대했다. 모두 잠재적 발화점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란은 압박을 키우고, 이스라엘도 물러설 기색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최근 공습으로 시리아 내 이란 혁명수비대 핵심 장성인 사이드 라지 무사비 준장을 죽인 일도 심상치 않다. '이란이 하마스·헤즈볼라·후티 등 대리 세력 동원 공격을 지속한다면 고위 관리들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이스라엘의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 작전 역시 확전의 또 다른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 트리타 파시 부소장은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이스라엘이 가자 공격을 늦출 때까지 매일 우리는 중동 전면전에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라며 “확전을 막는 확실한 방법은 (이스라엘·하마스 간) 휴전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