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주의 한 작은 도서관에서 책 낭독회 겸 북토크 제안을 받았다. 낭독회는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는데 도서관 지기님이 진행을 맡아 주신다고 하여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하기로 했다. 행사 당일, 이른 시간에 도착해 작은 도서관 곳곳을 둘러보는데, 지기님께서 추가로 양해를 구할 것이 있다며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혹시, 낭독회 전에 악기 연주가 있을 예정인데 스크린에 노래 가사와 북다마스 사진을 띄워도 괜찮을까요? 사진은 SNS에서 퍼 왔습니다." 나는 오히려 감사하기만 하다는 생각으로, 전혀 문제없다고 답했다.
낭독회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즈음, 참석자들 쪽을 향해 지기님이 씩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비상구와 화장실 위치, 유사시 탈출 방법, 핸드폰 무음 변경 안내 등등. "행사 중에 저쪽에 앉아 계신 지기님이 사진을 찍으실 텐데, SNS에 노출될 수 있거든요. 혹시 노출 원하지 않으신 경우 나가실 때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잘 가려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초상권에 관한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이렇게나 세심한 안내라니. 나는 꽤 감탄했다.
아코디언 연주가 시작됐다. 동시에 노래 '꼬마 자동차 붕붕'을 북다마스에 맞게 개사한 가사와 사진이 스크린 위로 지나갔다. 연주에 맞춰 함께 노래하자는 지기님의 말에,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더듬더듬 노래를 불렀다. 갑자기 노래라니, 부끄러우면서도 웃음 띤 얼굴을 감출 수 없는, 어쩐지 귀여운 시간이었다. 어느덧 낭독회 시간.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서, 심지어 다른 사람과 읽는 게 어색할 줄 알았는데 지기님의 꼼꼼한 진행 덕에 솔직하고도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기님이 내내 손에 쥐고 있던 A4 용지에는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행사를 마치고 다섯 지기님, 내 친구, 나 이렇게 함께 근처 식당에 갔다. 친구는 지기님들과 완전히 초면인 상황이라 나는 어색함을 풀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지기님께서 내 친구를 바라보며 대뜸, "우리 친구분, 이름을 맞춰 봅시다!"라며 운을 뗐다. 지기님들은 재밌겠다는 얼굴로 열심히 이름을 맞추려 했다. "초성 힌트 주세요", "받침이 있나요?" 대화는 수수께끼처럼 흐르고 이내 "정답!"이 외쳐졌다. 이름을 이렇게 열심히 맞출 일인가. 어리둥절하면서도 웃기고 감사했다. 그건 친구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기 위한 놀이였을 터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 그날의 대화와 웃음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 뭉클함에 가까운, 잊지 않고 싶은 온기였다. 누구도 해하지 않는 웃음을 잔뜩 짓고 온 것 같았다.
당장 SNS만 열어 봐도 자극적인 개그 소재나 편견과 혐오 위에 세워진 풍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 생각은 없지만 문득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웃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저 소비해도 되는지 골똘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예민하면 어떻게 웃나, 개그를 개그로 봐야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날의 장면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무언가 아주 자세히 보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세심함과 다정함으로 무해한 웃음을, 그것으로 충분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