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몰도바에 뻗친 푸틴의 마수… "러시아, 정부전복 시도"

입력
2023.02.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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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도바 대통령 "러 위장세력 잠입 계획 적발" 
"'친서방' 몰도바 정권 붕괴 목표, 실패할 것" 
몰도바 내 친러시아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서부와 국경을 접한 몰도바의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공작을 비밀리에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것도 다름 아닌 몰도바 현직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다. 국제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초기부터 몰도바를 호시탐탐 노렸던 러시아가 속내를 들킨 것 아니냐"라는 해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몰도바에 '친(親)러시아 정권'이 들어설 경우, 러시아로선 우크라이나의 북동쪽(러시아 접경)과 남서쪽(몰도바 접경)에서 협공하는 포위망을 구축하게 된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지역은 러시아 통제 범위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해 이번 폭로가 사실일 가능성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산두 대통령 "반정부 시위 조작, 크렘린은 실패할 것"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반정부 시위대로 위장한 공작원을 이용해 몰도바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두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친서방 성향으로 분류된다.

러시아의 '세부 작전'도 공개됐다. 산두 대통령은 "군사교육을 받은 러시아 군인들이 민간인 복장으로 시위 현장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하고 상황을 악화시킨 뒤, 국가기관 공격 또는 인질 납치 등의 계획을 세운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목표는 '친서방 정부 붕괴'라는 게 산두 대통령의 설명이다. 그는 "러시아가 몰도바의 헌법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작년 하반기 수차례 폭력 시위를 유발했으나 이미 우리는 이를 막아냈다"며 "크렘린(러시아)의 시도는 또다시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몰도바 정부는 지난해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지원을 받은 야권 수장 일란 쇼르가 친러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을 고용, 반정부 시위를 유도한 혐의를 포착해 그를 추방한 바 있다.

미국도 러시아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미국이) 독자적으로 상황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매우 우려스럽다"면서도 "(몰도바 정부 전복 시도가) 우리가 파악한 러시아의 행동 범위 밖에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충분히 진행했을 법한 공작으로 본다는 취지다.

러시아 '사실무근' 주장에도 뇌관 여전

러시아는 '사실무근'이라며 몰도바가 제기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14일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강력한 대결 구도 안으로 몰도바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몰도바 영토 내에서 미승인 국가로 명맥을 유지 중인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커넥션은 여전히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 남서부와 맞닿아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 러시아와의 연계성을 강조하며 '몰도바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러시아는 1992년 몰도바와 협정을 맺고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현재 트란스니스트리아엔 1,500명 이상의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상주하고 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정규군이 순차적으로 집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세계도 이곳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진출이 본격화하면, 유럽은 (우크라이나 본토와는 별개로) 절충 지역 없이 러시아군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