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로 꺼내진 물고기는 한동안 격렬하게 움직였다. 양옆 지느러미를 휘젓고, 힘을 모아 꼬리를 튕겼다. 질식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의 표현’은 사람들에게 ‘싱싱함의 증거’로 번역돼 전해졌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쉼 없이 들려오는 대중가요의 데시벨은 그들의 펄떡이는 소리를 지웠다. 그사이 축제 참가자들은 다시 일회용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다음 고기잡이에 몰두했다.
이상기후와 코로나19 영향으로 중단됐던 '얼음나라 화천산천어축제'가 3년 만에 재개됐다. 23일 동안 약 131만 명이 다녀갔다. 화천산천어축제 등 ‘얼음낚시’ 프로그램을 포함한 겨울철 지역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동물을 활용한 축제가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여러 쟁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산천어 축제가 한창이던 지난달 25일 현장을 찾았다. 빙판 위에 서서 참가자들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순간을 접사 렌즈로 들여다봤다. 그 과정에서 특이점이 보였다. 바늘을 입에 물고 있는 개체는 소수라는 것. 미끼로 물고기의 먹이활동을 유도해 바늘을 입에 꿰는 낚시의 기본 원리에 의해 산천어가 잡힐 것이란 예상은 틀렸다. 대부분이 눈알, 아가미, 아랫배, 턱, 꼬리 등에 세 갈래 ‘훌치기 낚시’ 바늘이 마구 박혀 있었다. “이건 미끼 없이도 잘 잡힌다”던 낚시용품 상인의 설명이 떠올랐다. 훌치기는 물 속에서 작은 작살을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가 1.5~2m 간격으로 빼곡히 서서 일제히 훌치기 낚싯대를 휘두르고 있었다. “아빠! 고기 잡았어!”라고 외치는 어린아이의 낚싯바늘엔 어김 없이 산천어의 몸통이 걸려 있었다.
화천천은 어쩌다가 산천어의 고향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알고 보면 화천군은 애당초 산천어에게 별다른 ‘연고’가 없는 지역이다. 산천어는 주로 바다와 연결된 영동지방의 계류에서 발견되며, 영서지방인 화천천은 서식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산천어가 ‘맑은 물에 사는 어종’이라는 사실과 이름에 들어간 산(山)과 천(川)이 주는 청정한 이미지를 축제에 차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산천어는 다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축제용’ 산천어는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의 양어장에서 공급된다. 올해도 산천어 171.5t, 70만여 마리가 화천천에 풀렸다. 대부분은 40cm 두께의 얼음 밑을 떠돌다가 바늘에 꿰어져 나와 횟감이나 통구이 재료로 소진된다.
“어차피 걔들은 다 죽으니까, 놓아주지 마세요.”
한 참가자가 얼떨결에 낚시 바늘에 걸려 올라온 산천어를 다시 얼음구멍에 풀어주려 하자 축제 관계자가 다가와 만류했다. “못 잡은 사람들에게 나눔하세요, 저기 보이는 큰 통!” 그는 출입구 앞에 보이는 파란색 플라스틱 ‘나눔통’을 가리켰다. 통 안엔 물이 없었고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산천어로 가득했다. ‘나눔한다’는 말은 재미로 동물을 죽이고 버리는 행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게 했다.
일찍이 축제를 위해 철저하게 통제된 화천천의 자연환경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 왔다. 얼음낚시터를 조성하기 위해 물막이와 수중보가 설치되면서 화천천은 ‘고인 물’이 됐다. 거대한 어항이 만들어진 셈이다. 매년 준설과 적토 사업이 진행되면서 본래의 생태계가 완전히 훼손됐고, 그물망으로 분획된 화천천에서 본래 자생종인 수달의 삶터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낚시터에서 운이 좋아 살아남은 개체들이 다른 하천 줄기로 흘러 들어가면 ‘생태 교란종’이라는 지위를 얻는다. 축제가 열린 뒤부터 화천천에서 십수km 떨어진 춘천호에서 그물에 산천어가 걸려 나오기 시작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생태학자 김산하 박사의 표현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하천 생태계에 유입된 최상위 포식자 산천어의 존재는 ‘서울에 나타난 늑대’와도 같다.
김 박사는 “우리는 생태적 고려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도, 동물을 착취하지 않고서도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 축제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