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저 뒤편의 백악정 앞에는 줄기가 울퉁불퉁하게 굽이치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산에서 흔하게 만나는 서어나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5월 16일에 수령 25년을 맞은 나무를 심은 것이다. 이 나무는 넓은잎나무 중 참나무 다음으로 한국에 많은 나무로 꽃이 아름답지도 열매가 달리지도 않는다. 땔감으로나 쓰일 뿐이다. 왜 이처럼 평범한 나무를 기념식수로 심었을까? 산림 전문가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청와대의 나무들’에서 서어나무가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 이유를 추측한다.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서민들과 눈높이를 맞췄던 철학이 식수에도 투영됐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저서에서 청와대를 지켜온 나무 85종을 소개한다. 청와대에서 자라는 53과 108속 208종의 나무들 가운데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생태적으로 의미가 있는 나무들이다. 지난 9월에 ‘청와대 노거수군’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 등 고목들부터 수령이 744세에 달하는 주목까지 역사와 생태적 특징을 쉽게 풀어낸다.
저자는 청와대를 네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사진과 지도를 저서에 첨부해 대중이 직접 나무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청와대를 거쳐간 12명의 대통령들이 남긴 기념식수의 이야기들은 따로 모았다. 현재는 윤보선 전 대통령을 제외한 11명의 기념식수 20종 31건이 청와대에 남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취임 후 첫 식목일에 이팝나무를 심은 것은 쌀밥처럼 흰 꽃 더미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보릿고개 극복을 떠올렸기 때문이란 이야기,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였기에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의 재료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산딸나무를 기념식수로 정했다는 설 등도 저서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