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 강행 기류에 "직(職)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위기감이 확산되자 검찰 조직 수장으로서 배수진을 친 모습이다. 하지만 민주당 당론도 지켜보지 않고 정치권과 '강대강' 대결로 치달으며 여론전에 치중할 경우 역효과가 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국 검사장들은 폭넓은 의견 수렴을 위해 국회에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김 총장은 11일 대검찰청에서 주재한 전국 지방검사장 회의에서 "수사 기능이 폐지되면 저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사퇴 가능성을 내비쳤다. 민주당이 12일 '검수완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할지 결정하기로 한 가운데, 김 총장은 거취까지 언급하며 한층 강경한 어조로 반대 입장을 밝힌 셈이다.
김 총장은 지난해 6월 부임 이래 '검찰 안정화'에 방점을 찍었지만, 검사들이 '물렁한 총장'을 성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자 강경 노선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사·보임으로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이 가시화되자, 친정권 인사로 분류되던 그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검수완박'을 두고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직을 내던진 전례도 김 총장의 대응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조직 내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되면 총장도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복현 부장검사 등 일부 검사가 노골적으로 김 총장과 검찰 수뇌부를 직격했다.
김 총장은 이날 검찰의 6대 범죄 수사 제한 등 지난해 시행된 수사권 조정 법안이 연착륙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수완박' 추진은 무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70년 만의 형사사법제도 관련 큰 폭의 변화로 절차가 복잡해지고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등 여러 문제점과 혼선이 발생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지난해 새로운 형사사법제도 도입 당시엔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하며 현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췄지만, 이번엔 "수사를 제도로 금지하는 것은 선진법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반대 노선을 확고히 했다. 김 총장은 검찰의 수사기능 전면 폐지시 △중대범죄 대응 무력화 △사건 처리 지연 등으로 국민 불편이 가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지검장들도 이날 7시간 마라톤 회의 끝에 김 총장과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이들은 "수사를 못하면 인권보장을 책무로 하는 검찰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며 "수사는 사건 관계인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필수 절차"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에 형사사법제도개선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또 숙의 과정 없이 '검수완박' 법안이 강행 처리되면 지검장들도 직을 내려놓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윤 당선인 취임 전 입법 강행 의지를 내비친 민주당에 속도 조절을 촉구한 셈이다. 회의에선 민주당 당론에 따른 단계별 대응 방안이 집중 논의됐으며, 상황에 따라 김 총장이 사퇴를 결심할 경우 적절한 시점에 관한 이야기도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강경 노선으로 여론전에만 몰두하는 대검 전략에 검찰 내 거부 반응도 적지 않다. 하동우 수원지검 안양지청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정치권을 자극하기보단 차분하게 대응할 때라고 밝혔다. 그는 "기소의 전제는 사실 확인이고 수사인데, 정상적인 민주당 의원이라면 못하게 할 리는 없지 않겠느냐"며 "대검의 일은 의원들을 설득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라 지적했다. 강경 일변도 전략은 정치권에 입법 추진의 빌미만 주는 것이니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상형 검사는 "대검의 총동원령(일선의 반대 입장 표명 주문)이 '긁어 부스럼' 아닌가 싶다. 차분하게 할 일을 국민적 싸움 구경으로 만들어놨다"는 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