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사람 총으로 쐈다”… 獨 정보기관, 러군 학살증거 감청으로 확보

입력
2022.04.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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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민간인 신문 후 총격”  명령도
“도네츠크 피란민 열차 피습… 최소 30명 사망” 
“마리우폴 민간인 10만 명 갇혀”
“부차 학살 후 평화협상 분위기 바뀌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 등에서 러시아군이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정황과 관련, 독일 정보기관이 일부 증거를 감청으로 확보했다. 학살 흔적을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러시아군의 주장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키이우 인근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이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ㆍ남부에서도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독일 주간 슈피겔은 독일 대외정보국(BND)이 부차 등지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 살해와 관련해 나눈 대화를 감청해 전날 독일 의회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이 스마트폰이나 무전기인 PTT 단말기(Push To Talk Radio)를 이용해 나눈 대화 내용인 것으로 추정된다.

슈피겔은 해당 통신에서 러시아 군인이 동료에게 "조금 전 자전거 탄 사람을 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러시아군이 “먼저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신문하고 나서 쏴라”고 명령하는 대목도 있다고 한다. WP는 해당 통신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을 신문한 뒤 총살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통신 내용은 부차 지역의 민간인 학살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는 러시아군의 주장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또 해당 통신의 러시아군 대화 내용은 민간인 학살을 일상생활 얘기를 하듯 취급한 점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간인 학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 활동의 기본 전략의 일부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등 다른 격전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키이우 인근에서 퇴각해 우크라이나 동ㆍ남부를 집중 공략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공세는 이날도 계속됐고, 민간인 피해는 속출했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키이우 북서쪽 외곽 도시인 보로댠카의 단 두 개의 집 잔해에서 시신 26구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보로댠카 마을의 상황이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로 비난받았던 부차 지역의 상황보다 분명히 더 끔찍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같이 전하며 "키이우와 다른 지역의 거의 모든 거리는 러시아군이 철수한 부차의 모습과 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도 러시아군의 포격이 계속됐다. 우크라이나 국영철도회사는 이날 러시아군이 도네츠크 주 크라마토르스크의 기차역에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해 최소 3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 당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차중이던 열차 3대가 출발하지 못했으며, 열차를 타고 피란을 떠나려던 주민 수 천 명이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남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러시아 군함이 이날 흑해에서 오데사 지역에 발사한 미사일로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됐다고 오데사 시의회가 SNS를 통해 알렸다. 도시의 90%가 파괴됐다고 알려진 마리우폴에서는 “1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긴급 대피하지 못한 채 도시에 남아 있다”고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이 이날 전했다. 러시아군이 포위한 채 통로를 터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진행 중인 평화협상은 부차 학살 이후 경색된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 협상단원인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 보좌관이 “부차 학살로 평화협상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양측은 지난달 29일 터키에서 열린 5차 협상 뒤 1일부터 온라인으로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김청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