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때문에 우리가 코로나 걸렸잖아요.”
입원한 남편을 돌보던 아내가 저를 향해 쏘아붙였습니다. 날 선 목소리엔 원망과 핀잔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소리 들으려고 지금까지 버텨왔나 싶었습니다. 환자 앞인데도 덜컥 화가 났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하는 내내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다스려야 했습니다.
저는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도 사람인지라, 그날 이후 그 아내 분을 피하고 있습니다. 원내 감염은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마저 무너뜨렸습니다. 경력 30년 만에 처음으로 의료체계 붕괴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방역당국이 원망스럽습니다.
아내는 남편 옆 병상에 있는 투석 환자가 확진된 바람에 자신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됐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투석 환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병실 창문도 열려 있었습니다. 투석 환자나 그 환자를 돌본 의료진과 직접 접촉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감염됐는지 누구도 알 수 없죠. 그런데도 무작정 의료진을 탓하는 모진 말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22일 현재 우리 병원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0명에 육박합니다. 열흘쯤 전 아래층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감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는 중입니다. 처음엔 모두가 당초 세워둔 계획대로 대응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아래층으로 옮기고, 위층과 철저히 분리해 운영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오미크론의 무서운 전파 속도에 계획 따윈 먹히지 않았습니다. 확진된 간병인이 PCR검사 음성인 환자를 돌보고, 음성인 간병인이 확진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확진층과 비확진층 분리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조심했는데도 확산세가 우리 층으로 올라오는 기미가 보입니다. 어르신들 마스크가 내려갈 때마다 속이 타 들어갑니다. 어쩔 수 없이 몇몇 어르신 얼굴에다가는 테이프로 마스크를 붙여 놓았습니다.
직원 식당이 아래층에 있어 며칠 동안 점심을 김밥으로 때웠는데, 너무 짜고 물려서 도저히 넘어가질 않을 지경입니다. 이젠 도시락 용기를 구해 식당에서 음식을 퍼다 위층으로 가져와 먹고 있죠. 초등학생 자녀를 둔 동료 간호사는 그것도 불안하다고 집에서 도시락까지 싸옵니다. 환자도 의료진도 내 차례는 언제일지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확진자 100명이면 예전 같아선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됐을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입원 환자들이 새로 계속 들어옵니다. 환자 보호자에게서 모진 말을 들었던 어제도 중환자실에 환자가 새로 왔습니다. 우리 중환자실은 환자의 70%가 확진됐고, 음압시설도 없습니다. 이걸 알고도 입원한다는 건, 확진자 없는 병원이 없고 어르신들이 갈 병원은 더더욱 없어서겠죠. 내일 입원이 예정된 어르신은 코로나19에 걸렸다 격리해제 됐는데 폐렴 치료를 더 해야 한답니다. 집단감염 상황을 알고도 입원시킬 수밖에 없는 가족들 심정은 어떨까요.
이런데도 의료 체계가 감당 가능하다고요? 현장 의료는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확진 환자에겐 엑스(X)선 촬영을 미루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촬영실로 옮겼다 감염이 더 확산될지 모르니까요. 옆 병동은 의료진 절반 이상이 확진됐습니다. 이러니 3일로 줄인 격리 기간조차 안 지켜지죠. 열 나고 목 아픈데도 환자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에선 감염이 늘어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마저 팽배합니다. 원내 감염이 컨트롤 가능한 범위를 이미 벗어났으니까요.
델타 대유행도 무사히 넘긴 우리 병원에 오미크론 폭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습니다. 이렇게 환자와 의료진을 방치하는 건 죽을 사람은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당국의 무책임에 너무 화가 납니다. 저도 이제 탈출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