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이 대(對)러 제재 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여 품목에 대한 국외 반출을 금지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그러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러시아 수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카드를 내밀며 다시 러시아를 옥죄기로 했다. 러시아와 서방이 끝장대결을 펼치는 양상이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서방의 제재로) 일부 품목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대러 제재의 피해는 오히려 서방 국가들이 볼 것이며, 러시아는 이를 극복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방 제재에 대한 ‘맞불’ 격인 러시아 생산품 수출 금지 목록을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ㆍ천연가스 수입 금지 등의 제재가 추가된 8일 한국을 포함한 비우호국 명단을 발표하면서 명단에 오른 나라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말까지 기술·통신·의료장비·운송수단·농기계·전자기기 등을 포함한 200여 종 품목에 대한 국외 반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열차 차량과 기관차, 컨테이너, 터빈, 철 및 석재 가공용 선반, 모니터, 프로젝터 등이 들어있다고 러시아 정부는 밝혔다. 해당 상품들은 구소련권 국가의 경제연합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에만 정부 허가를 거쳐 수출할 수 있다. 비료와 곡물, 설탕 등의 품목은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수출이 금지되고, 비우호국들엔 목재 판매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식량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역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를 내렸지만 러시아는 계약상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며 가스 수출 중단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방의 대러 제재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 '항구적인 정상 무역 관계'(PNTR) 종료 방침을 밝히고 이에 대한 의회의 동의를 요청했다. 미국이 무역에서 러시아의 최혜국 지위를 박탈하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미다. 미 무역대표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러시아와 미국의 교역 규모는 약 280억 달러(34조5,000억 원)에 달한다. 최혜국 관세 지위가 박탈될 경우 러시아가 미국으로 수출한 품목에 최고 400%에 달하는 관세가 붙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요7개국(G7) 등 동맹국은 경제 제재에 대한 공조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산 보드카를 포함한 주류와 수산물, 다이아몬드에 대한 수입 금지도 선언했다.
영국정부도 이날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포함한 러시아 부호 7명의 영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이들의 영국 입국과 체류를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