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로 인기를 끌던 여동생을 ‘집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살해한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파키스탄은 2016년 ‘명예살인’을 강력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까지 개정했지만, 또다시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신문 돈 등 외신은 파키스탄 라호르 고등법원 물탄 지원이 여동생 칸딜 발로치를 살해한 오빠 와심 아짐에게 이날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아짐은 이번 주 내 석방된다.
발로치는 파키스탄의 ‘킴 카다시안’으로 불리며 페이스북 등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가부장적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도 성평등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파키스탄 사람들의 전형적인 마음가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등 소신 발언을 해 이전에도 다른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펀자브주(州)에 있는 자택에서 오빠 아짐에게 살해당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아짐은 “동생을 죽인 것에 후회는 없다”며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발로치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파키스탄은 2018년 기준 인구 수당 가장 많은 명예살인이 자행된 국가다. 매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5,000여 건의 명예살인 중 1,000여 건이 파키스탄에서 발생한다.
발로치 살해 사건으로 명예살인이 다시 큰 논란이 되자 파키스탄 의회는 같은 해 ‘반(anti)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의 법률을 통과시켜 살인자가 최대 종신형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전까진 다른 가족 구성원이 범행을 용서할 경우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 2019년 아짐에게 새 법률이 적용됐고,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아짐이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사법부를 향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판결이 뒤집힌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발로치의 부모가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한 영향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파키스탄 국민들은 부모의 용서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강력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라호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사아드 라줄은 “파키스탄 법에 명예살인이란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가족이 가해자를 용서해도, 사회는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카타르 민영방송 알자지라에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캄란 하이다르는 “모든 살인자와 테러리스트의 부모가 자식을 용서한다고 하면 법원은 전부 무죄라고 판결할 것이냐”고 반문하며 “파키스탄이란 나라에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트위터에 공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