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개조까지 해보지만... "이러다 다 멈춘다" 영업 포기 현실화

입력
2021.11.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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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수 품귀 대책 없어 아우성>
8000원 요소수가 10만원에도 못 구해
기름값보다 요소수 값 더 들어 '울화통'
요소수 취급 주유소 10곳 중 파는 곳 '0' 
차 세우고 카센터에 불법개조 문의까지


김도겸(42)씨는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며 농수산물을 운송하는 화물기사다. 7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서 만난 김씨는 주유소와 오픈마켓에서 요소수를 구하지 못하자, 중고상품을 판매하는 중고나라와 당근마켓 등에서 요소수 판매자를 알아보고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10리터에 8,000원 선이었지만 당근마켓 등에선 이날 8만5,000원과 11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이마저도 대화를 나누는 사이 판매가 완료됐다.

그는 "현재 비축량으로는 목포까지 갈 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가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김씨에 따르면 요소수 10리터를 주입하면 400㎞ 정도를 갈 수 있다고 하니, 어렵게 10리터를 구한다고 해도 목포까지 한 차례 이동할 분량에 불과하다. 김씨는 "목포까지 기름값이 6만 원 정도 든다. 요소수 값이 더 비싼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요소수 부족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비용 부담에 운송업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장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장거리 운송기사들은 배편도 고려하고 있다. 인천에서 제주까지 운행하는 화물선에 6.5톤 차량을 싣게 되면 편도 선적비는 70만 원에 달해 만만치 않지만, 그마저도 만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못 되는 차주들은 아예 영업을 포기했다. 폐기물 수집업체 관계자는 "차량 7대 중 2대만 운영하고 5대는 세워두고 있다"면서 "요소수 부족으로 집게차를 쓰지 못하다보니 급한 대로 1톤 화물차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철물을 옮겨 싣고 있다"고 말했다.

요소수 취급 주유소 10곳 중 파는 곳은 '0'

이날 요소수 판매업체가 운영 중인 '요소수 취급 주유소' 사이트에서 서울과 경기 지역 주유소 10곳을 확인한 결과, 요소수를 판매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대부분 지난주에 요소수 판매 물량이 모두 떨어졌다.

서울 금천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박정웅(54)씨는 "하루에 200통씩 요소수가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박씨는 "주유기에서 파는 물량은 지난주 화요일에 이미 다 팔았다"며 "예전에는 주문한 지 하루 이틀 지나면 물량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2, 3주가 지나도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영등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송모씨도 "요소수를 찾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전화를 끊어놨다"며 "주문을 넣었지만 2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요소수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보니, 화물기사들 사이에선 '요소수 판매 주유소'가 알음알음 공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주유소를 찾아가면 이미 '완판'됐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무리한 '정관수술' 땐 수리비 더 들어

한계 상황에 몰린 일부 기사들은 요소수 없이도 작동할 수 있도록 트럭을 불법개조하는 '정관수술'에 나서고 있다. 서울 상계동에서 트럭 개조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안정환(42)씨는 "최근 들어 트럭 개조 문의가 하루에 2, 3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한 화물기사는 "스위치로 껐다 켰다 하는 방식은 200만 원 정도 든다. '통갈이'의 경우 수리비가 500만 원 이상인데 이마저도 예약이 밀려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섣부른 개조는 차량에 무리를 줄 수 있다. 화물운송기사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강훈익(65)씨는 "기사들이 워낙 절박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까지 하지 않겠냐"며 "하지만 큰 차량은 개조했다가 한번 고장나면 1,000만 원까지 나간다"고 말했다.

요소수 대란은 운송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경남 통영시에서 해산물 판매업을 하는 김성규(38)씨는 "해산물은 신선도 때문에 당일 발송이 원칙인데, 택배업체 운송 차량이 줄어들면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건설업계도 울상이다. 지금 추세라면 조만간 자재운반용 대형화물차와 레미콘, 덤프트럭 등이 모두 '올스톱'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5년째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박모(62)씨는 "원래 요소수는 공사 현장에서 대주는데 최근엔 안 주고 있다"며 "현장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15만 원어치 요소수를 120만 원 주고 구입했다"고 전했다.

소방서 앞에 놓인 요소수 10통... '얼굴없는 기부' 잇따라

한편 요소수 품귀 현상으로 소방차 운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경남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 율하·장유·진례 119안전센터 입구에 10리터(ℓ) 요소수 박스가 발견됐다. 소방본부 측은 한 남성이 율하에 3통, 장유에 1통, 진례에 1통의 요소수를 두고 사라졌으며, 또 다른 남성도 비슷한 시간대에 장유에 요소수 3통을 기부하고 자취를 감췄다. 이들은 모두 편지나 별다른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

경남소방본부 측은 "이들이 요소수 품귀 현상 때문에 소방 차량의 119 출동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걱정해 요소수를 기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부한 도민의 마음을 신속한 출동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소방 당국은 요소수 사태가 장기화할 때를 대비해 재고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하는 6,748대 소방차 중 80.5%가, 1,675대 구급차량 중 90%가 요소수를 사용하는 차량이다.

원다라 기자
나광현 기자
최주연 기자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