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강제로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끊던 '게임 셧다운제'가 사라지면서 청소년은 본인의 게임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된다. 규칙이 필요하다면 아이들과의 '협상' 책임은 이제 가정이 져야 한다. 대신 정부는 게임 중독 상담·치유 프로그램, 게임 이해력(리터러시) 높이기 교육 등으로 과몰입 예방을 '측면' 지원하는 길을 택했다.
과도한 규제를 걷어내고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지만, 자칫 방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히려 셧다운제보다 더 강한 부모 개입이나 간섭으로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걱정도 적지 않다. 청소년과 가정의 자율적 조절 능력이 작동하기에는 게임물 정보 제공 수준이나 대안적인 안전장치 시스템 등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시각에서다.
25일 정부는 '게임시간 선택제'(본인 또는 부모가 요청하면 게임 시간 설정 가능)만 살리고 강제적 셧다운제(0~6시 게임 접속 불가)는 폐지하기로 했다. 일률적 방식인 셧다운제 그늘에 가려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게임시간 선택제의 인지도와 편의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셧다운제는 청소년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게임을 잘 모르는 부모 대신 국가가 접근을 차단하는 형태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후 나온 다수의 연구는 청소년 수면이 게임보단 학습 시간과 연관성이 높다는 걸 보여줬다. 셧다운제가 도입 당시 대세였던 PC게임에만 적용되다 보니, 청소년이 이용하는 게임 중 90%를 차지하는 모바일에선 규제력도 없다. 지금 부모인 세대가 한때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를 즐겼던 세대라는 걸 고려하면 가정 내 게임 지도가 아예 불가능한 환경도 아니다.
게임시간 선택제 아래에선 부모 또는 자녀가 요일별로 게임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기존 게임시간 선택제는 일일이 게임마다 접속해서 설정해야 해 이용률이 저조(게임별 1~28%)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문화체육부 산하 게임문화재단에서 한 번에 설정할 수 있다. 고령층 보호자를 위한 전화·팩스 신청도 병행한다. 사각지대 청소년의 경우 교사나 사회복지사가 대신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는 또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보호자와 교사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게임 지도 지침(가칭 '이럴 땐 이렇게')을 10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으로 제작해 보호자 커뮤니티와 교육 포털에 배포할 예정이다. 청소년이 즐겨 하는 게임의 내용, 특성, 장단점 등을 설명한 콘텐츠도 제작하기로 했다.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무조건 못 하게 하는 것보다는, 원활한 소통과 건전한 이용 환경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게임시간 선택제에 시간 상한은 없다. 매일 24시간으로 설정하면 무제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호자가 게임이나 선택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문체부와 교육부는 최대한 전문성과 실효성을 갖춘 보호자 교육용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게임마다 이용 문화나 방법이 워낙 다양한 데다, 제공할 정보 기준과 범위를 정하는 것도 어려워 결국 형식적인 안내서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취지 역시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모의 개입이 아예 없다면 자유롭게 시간을 설정할 수 있지만, 부모가 한 번 설정했으면 자녀가 시간을 바꾸지 못한다. 심야 6시간만 제한하던 셧다운제보다 더 큰 제한이 각 가정 방침에 따라 정해지는 셈이다. 모바일 게임에는 제도 자체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도 여전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부모 권한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부모와 자녀가 충분히 대화로 시간을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며 "부모가 게임에 대해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모바일 게임에서 이용시간 한도 설정 등이 가능한 민간 서비스 이용 방법도 책자와 동영상으로 제작해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