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해 보이지만 영적인 음악의 주인공

입력
2021.08.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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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영혼의 울림' F# 장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반음 올라간 F(파)가 주인공(으뜸음)인 F# 장조의 조표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다. F(파) C(도) G(솔) D(레) A(라) E(미) 무려 6개 음에 샾(#)이 붙어있다. 그만큼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조성이다. 그래서일까, 이 조성은 고난을 극복하는 노래에서 빛나는 듯하다.

'나부코'의 대표 아리아에 사용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광복 76주년을 맞아 국립오페라단은 12~15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오페라 '나부코'를 공연한다. 이 작품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가 된 유대인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노래(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하는 장면이다.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조국의 산비탈과 언덕에 내려앉아라' 등 가사에서 절절한 향수가 느껴진다. 역경을 딛고 해방을 꿈꾸는 이 노래가 F# 장조로 작곡된 대표곡 중 하나다.

장재진 기자(장): 18세기 독일의 저명한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크리스티안 슈바르트는 그래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영혼의 울림이자 고난을 극복한 승리, 장애를 뛰어넘은 안도의 한숨"이라고 F# 장조를 표현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종소리의 정체

: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은 특별히 이 조성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창작에는 언제나 가톨릭 신앙이 있었는데,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햇빛을 소리에 담으려 했다. 지휘자 정명훈은 메시앙을 '음악의 성자'라고 불렀다. 그의 대표작 '투랑갈릴라(Turangalila) 교향곡'은 슬픔 한가운데에 놓인 인간이 섬광처럼 발견한 환희, 거부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을 노래한다.

: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재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도 F# 장조와 관계가 있다. 대성당의 가장 거대한 종인 '엠마뉘엘'의 종소리가 바로 F#으로 제작된 것. 나머지 종들의 음정 역시 F# 장조 음계의 음들로 구성돼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가나 메시앙과 같은 음악인에게 F# 장조는 영적인 소리였던 모양이다.


물결을 그린 음악에도 쓰여

: 사실 F# 장조는 다른 조성들처럼 특색을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이 조성의 색깔을 '그레이시 그린(Grayish Green)'이라고 묘사한 반면 스크리아빈은 '브라이트 블루(Bright Blue)'로 느꼈다. 앞서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 역시 새파란 물과 가까운 조성으로 여기곤 했다.

: 실제로 쇼팽은 1845년 '뱃노래(Barcarolle·Op.60)'를 작곡하면서 이 조성을 썼다. 8분의 12박자로 쓰인 이 곡에는 군데군데 파도의 물결과 배의 일렁임이 음형으로 표현돼 있다. 피아니스트 신창용이 2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 현대로 오면 1980년 아바(ABBA)가 발표한 팝송 '승자는 모든 것을 차지해(The Winner Takes It All)'에서 F# 장조의 매력이 드러난다. 아바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로 꼽히는데, 뮤지컬 '맘마미아' 등에 쓰였다.



장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