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치 독일의 우생학을 연상시키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또 논란에 휩싸였다. “백인은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며 은연중 백인우월주의를 부추긴 것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 의도라지만 정치적 이익에만 매몰된 대통령의 반(反)인권적 행보에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
21일(현지시간) 미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미네소타주(州) 베미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해 “(그의 당선은) 소말리아 난민의 범람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의 발언은 다음에 나왔다. 그는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은 미네소타의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주마 이론’을 들먹이며 “모든 것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매우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유전학을 모방한 경주마 이론은 ‘특정 인종이 유전적으로 우월하게 태어났다’고 전제하는 차별적 사상 중 하나다.
미네소타는 주민 대다수가 스칸디나비아계열 후손들로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주민 79%가 백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유세에 참가한 트럼프 지지자들 역시 대부분 백인이어서 누가 봐도 백인의 우수성을 설파한 발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태생과 인종을 잣대로 인간을 구분 짓는 트럼프의 인식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특정 혈통과 출생지의 우월성을 강조해왔다. 트럼프는 2014년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독일 혈통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2016년 미시시피 대선 유세에선 “나는 아이비리그 교육을 받은 똑똑한 사람”이라며 “훌륭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자찬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트럼프는 독일 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해 폭스뉴스 인터뷰(2018),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사무총장 기자회견(2019) 등 여러 공식석상에서 아버지가 독일 태생이라는 거짓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 출생이다.
트럼프의 비도덕성은 유전자론을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유색인종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점에 있다. 그는 과거 ‘버서(Birther)’ 음모론을 주도하며 명성을 얻은 적이 있다. 버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케냐에서 태어나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극보수 음모론자를 뜻한다. 트럼프는 지난달 한 기자회견에서 버서 음모론을 다시 소환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유색인종인 점을 들어 똑같은 의혹을 제기한 것. 트럼프의 전기 작가인 마이클 디안토니오는 일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인생을 살면서 배우는 가치보다 유전적 특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며 “사람을 집단으로 판단한다”고 단언했다. 인종을 차별하는 고정관념이 사고방식 전반에 강하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종차별 항의 시위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단순한 '수사' 이상의 위험이 될 수 있다. 8일 CNN방송 보도를 보면 미 국토안보부는 새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으로 백인우월주의 집단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