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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 배계규 화백

반골이란 수식이 잘 어울린다. 군부독재의 잔영이 여전하던 1990년 지리산 빨치산을 정면에서 다룬 영화 ‘남부군’을 연출했다. 충무로가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는 ‘피아골’(1955)이후 45년 만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은 자유진영을 돕기 위한 것’ 식의 정답이 여전히 지배하던 시절 한국군 참전의 그늘을 들춘 ‘하얀전쟁’(1992)을 선보이기도 했다. 정지영(73) 감독의 영화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우리 현대사에 대한 대안적 접근법을 제공했다. ‘부러진 화살’(2011)로 고압적인 사법부의 실태를 고발했고, ‘남영동 1985’(2012)로는 5공화국 당시 고문 경찰의 잔혹함을 묘사했다. 정 감독은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들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

비판적 사고를 반영한 정 감독의 영화 만들기는 ‘블랙머니’(상영 중)에서도 이어진다. 미국계 투기자본이 1997년 외환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내 대형 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차익 실현을 위해 불법적으로 매각하는 과정을 고발한다. 국가경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기자본과 협조하는 일부 고위 공무원의 행태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투기자본의 ‘먹튀’ 과정에서 희생자는 결국 죄없는 노동자이고, 국민임을 적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정의를 위해 사건을 파헤치는 검사를 등장시켜 쳥량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관객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개봉 다음날인 14일부터 20일까지 7일 연속 일일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다. 21일까지 ‘블랙머니’를 찾은 관객 수는 145만5,029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다.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야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음모론에 입각해 현실을 바라본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상업영화들이 외면하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정 감독의 결기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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