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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신임 아르헨티나 대통령. 배계규 화백

멋들어진 콧수염에 선한 눈매를 가진 이 남자. 야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순(耳順)의 무명 정치인이 만년 국가부도 위기를 겪는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짊어질 구원투수로 낙점됐다.

지난달 27일 국제금융계는 아르헨티나 대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됐다. 좌파진영을 대표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60)가 당선된 것. 금융시장은 그의 등장을 ‘페론주의’ 부활로 받아들였다. 1940년대부터 명맥을 이어 온, 아르헨 특유의 대중영합주의다. 과거처럼 복지재원을 남발하다가는 나라 경제가 결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난해 아르헨에 570억달러(66조6,900억원)를 꿔준 국제통화기금(IMF)의 불안감이 특히 컸다.

돈도 돈이지만 페르난데스를 미심쩍어하는 진짜 이유는 부통령에 당선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66) 전 대통령이다. ‘부부 통치’로 무려 12년 간 권좌를 놓지 않았던 인물이다. 크리스티나는 IMF를 서슴없이 ‘악당(villain)’이라 부르는 뼛속까지 페론주의자다. 기업인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부패 이미지 탓에 승리를 자신할 수 없게 되자 페르난데스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것 아니냐는 의심이 많다. 오죽하면 “여왕이 돌아왔다(로이터통신)”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

실제 페르난데스의 정치 역정은 ‘전략가(strategist)’라는 평이 더 어울린다. 크리스티나 밑에서 내각 국무실장을 맡는 등 주로 그늘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무조건 ‘예스맨’은 아니다. 2008년엔 크리스티나의 사법부 정치화에 반발해 사임하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온건한 페로니스트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그의 홀로서기 여부를 가늠할 첫 시험대는 IMF와의 구제금융 재협상이 될 전망이다. 페르난데스가 내놓을 카드에서 크리스티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면 아르헨 경제는 다시 요동칠지 모른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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