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휴전” 장외 압박에… 日 ‘화이트리스트’ 딜레마

입력
2019.07.31 18:35
수정
2019.07.31 23:4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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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ㆍ세코 장관 “한국 제외절차 진행” 강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1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북한의 발사체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1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북한의 발사체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의 두 번째 단계인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방침을 세운 상황에서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일본이 감수해야 할 후폭풍 우려와 함께 유화적인 태도로 돌아설 수 있지 않느냐는 관측도 있지만, 정치적 실익을 얻지 못한 채 일본 정부가 ‘뽑아 든 칼’을 그냥 거둘 가능성은 낮다. 다만 그간 한일 갈등을 방관하다시피 해온 미국이 3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앞두고 진일보한 관여 의사를 밝혀 2일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확정할 각의(국무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31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의 브리핑에서 드러난다. 그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일본의 방침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이번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은 안보를 위해 수출관리 제도의 적절한 운영에 필요한 재검토로, 방침에 변화는 없으며 절차를 진행해 갈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오전에는 미국이 한일 양국에 일정 기간 새로운 대항조치를 하지 않는 분쟁 중지 협정에 서명을 검토하도록 제안했다는 로이터 보도를 부인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장관도 이날 “(개정) 절차를 진행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교도(共同)통신이 전했다.

미국이 한일관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잇단 보도들은 미국이 한일 과거사 갈등이 무역분쟁뿐 아니라 안보분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강행할 경우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ISOMIAㆍ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일 간 ‘강 대 강’ 대치가 멈추지 않으면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전략에서 한미일 3국 안보 공조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한일갈등에 관여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은 일본 입장에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야당은 물론 대내외 언론들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경분리 원칙을 깨고 과거사 갈등을 경제 분쟁으로 확전시켰다.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보류하거나 중단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교도통신은 “태국에서 열리는 ARF 회의에 맞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다음달 2일 열릴 예정이지만,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중재안이 제시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보도했다.

도쿄(東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최근 일본 정치권 인사를 만났는데 여러 채널을 통해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한 우려를 전달 받고 있다고 하더라”며 “다만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주도해 온 총리관저 분위기는 여전히 강경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유보하기 보다 예정대로 2일 각의에서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다. 다만 이 경우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되, 한국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운용하면서 미국의 진의를 신중하게 살피며 중재에 응할지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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