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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을 제작한 미키 데자키 감독의 캐리커처. 배계규 화백

독립 영화 하나가 일본 극우 세력을 헤집어놨다. “그들은 성노예가 아니라 매춘부다.” “‘위안부’ 여성들이 전적인 지배하에 있었다면 노예제가 성립된다.” 주장과 반론, 재반론이 끝없이 교차된다. 스크린은 총알 대신 논리가 빗발치는 전쟁터다.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에는 일본 자민당 의원과 극우 논객, 친일 미국인부터 일본군 ‘위안부’ 지원단체 활동가, 역사학자, 법률가까지 이 문제에 관계된 인사 30명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말(言)들을 추적하되 판단을 미루지 않는다.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는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지워내려 했는지, 나아가 이들을 어떻게 성적 대상화했는지 보여주는 세계적인 상징”이라고 못 박는다.

카메라는 더 내밀한 곳까지 돌진해 극우 세력을 겨냥한다. 이들의 사상은 전쟁 이전의 일왕(‘천황’) 중심의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뿌리 깊은 열망과 특권적 계급의식에 근거하며 그 중심에는 극우 세력의 본산인 일본회의와 아베 신조 정권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결론에 도달할 즈음이면 관객은 감독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일본 극우 세력을 도발한 이 감독은 일본계 2세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다. 그는 왜 이런 영화를 찍게 됐을까. 2007년부터 5년간 일본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던 그는 일본 내 인종차별을 다룬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극우 세력에게서 인신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1991년 ‘위안부’ 문제를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도 오랫동안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일본 극우 세력이 ‘위안부’ 문제에 왜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영화에 출연한 극우 논객 3명은 지난 5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감독이 학술 연구라고 우리를 속여 출연시켰다”며 상영 반대 운동을 하고 데자키 감독을 고소하겠다고 별렀다. 그러자 데자키 감독 역시 6월 3일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을 포함한 우익 논객 7명 모두와 촬영 전 작성한 ‘영화 공개 승낙서’를 공개한 것이다. 극우 논객들이 고소를 행동에 옮기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아베 정권의 수출품 규제로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한창이다. 그러나 ‘주전장’은 일본 영화가 아니며, 감독 역시 일본인이 아니다. 25일부터 극장에 걸린 이 영화를 우리가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앞서 4월 일본에서도 개봉한 이 영화는 첫날부터 매진, 현재까지 소규모 영화로는 이례적인 6만 관객을 동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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