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수천 명 이를 것”… 술라웨시섬은 무법천지

입력
2018.09.30 17:41
수정
2018.09.30 22:5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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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 주민들이 쓰나미가 휩쓸고 간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콤파스 캡처
팔루 주민들이 쓰나미가 휩쓸고 간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콤파스 캡처

저개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더욱 낙후된 곳으로 분류되는 술라웨시 팔루, 동갈라 지역의 강진과 쓰나미에 따른 피해가 사회혼란으로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인재나 다름없는 당국의 허술한 대비로 1,000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교도소 탈옥 및 폭도들의 약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30일 콤파스, 자카르타 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28일 강타한 진도 7.5 강진으로 반파된 팔루 시내의 라마야나 백화점 붕괴 현장이 옷과 물건들을 훔치는 시민들로 들끓고 있다. 이들은 구조 요원들이 매몰자에 대한 구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약탈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강진 등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이라고 밝힌 자카르타 포스트는 “물건을 가져가도 그들을 제지하는 군인과 경찰이 없다”고 전했다.

강진으로 인근 교도소 수감 죄수들이 탈옥한 것도 치안 부재 상황을 가중시키고 있다. 안타라 통신에 따르면 560여명이 수감된 팔루 교도소 벽이 지진으로 무너지면서 절반 이상 수감자가 도망쳤다. 아디 얀 리코 팔루 교도소장은 “경비원 역시 지진으로 패닉 상태였다”며 “그들의 탈옥을 막기는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동갈라 교도소에서도 재소자 100여명 이상이 탈출했다. 이들은 가족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시적인 석방을 요구했지만,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수감시설에 불을 지르고 탈옥을 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피해파악 안돼

통제되지 않는 군중에 의한 2차 피해가 확산되는 가운데, 이틀 전 중부 술라웨시를 덮친 강진과 쓰나미에 따른 사망자 규모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은 “30일 오전 현재 사망자 숫자가 832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지만, 아직 피해 규모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규모는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이 “희생자가 수천에 이를 수 있다”고 높은 우려를 표시한 데 이어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군과 경찰에 구조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진앙지 인접 도시의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한 교민(46)은 “피해 지역은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고 도로, 통신 시설이 파손되면서 외부 지역에서 접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피해 규모가 지금보다 2, 3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구호에 나선 현지 적십자사 관계자도 “팔루 지역의 피해 상황 관련 정보는 제한적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동갈라는 통신이 완전히 두절돼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동갈라는 팔루보다 진앙에 더 가까워 팔루보다 더 큰 피해를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3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구조 당국 관계자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로아로아 호텔 잔해더미 속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콤파스 캡처
인도네시아 구조 당국 관계자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로아로아 호텔 잔해더미 속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콤파스 캡처

인도네시아 당국은 30일 현재 확인된 사망자 규모를 832명으로 잠정 집계했지만, 실제 피해 규모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강진 당시 팔루 시내 3성급 로아로아 호텔에는 수십 명 손님이 투숙 중인 게 확인됐으나, 호텔 붕괴 현장에서는 시신 2구만 발견된 상황이다. 호텔 관계자는 “객실 50개중 26개에 손님을 받아 놓고 있었다. 전체 손님은 50명 정도”라고 콤파스에 말했다. 잔해 속에 수십 명이 매몰, 숨졌거나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인 1명 연락두절

전기 통신 등이 끊긴 현지에서는 생활 물자와 용품 등 역부족을 호소하고 있지만 피해 주민들은 외부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와섬으로부터는 1,000㎞가량 떨어진 데다, 인근의 무티아라 SIS 알-주프리 공항의 활주로와 관제탑이 이번 강진으로 파손됐다. 군 수송장비도 투입돼 피해지역으로 구호 물품을 보내기 시작했고 다른 구호 단체도 피해지역으로 향하고 있다고 자카르타 포스트는 전했다.

국가재난방지청(BNPB) 수토포 대변인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이용해 피해 상황을 알리고 있다. 멀쩡하던 대교가 강진과 쓰나미로 처참한 모습으로 변했다. 수토포 대변인 트위터 캡처
국가재난방지청(BNPB) 수토포 대변인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이용해 피해 상황을 알리고 있다. 멀쩡하던 대교가 강진과 쓰나미로 처참한 모습으로 변했다. 수토포 대변인 트위터 캡처

한국인도 1명 연락이 두절됐다.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은 “발리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 A씨가 28일 오후부터 연락이 두절됐다는 신고를 재인도네시아 대한체육회로부터 접수했다”고 밝혔다. A씨는 현지 패러글라이딩 협회 관계자로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팔루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24일부터 팔루에서 지냈으며 강진 발생 이후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팔루에 접근하기 위해 30일 술라웨시섬 남쪽 마카사르에 도착한 대사관 관계자는 “여전히 A씨의 소재와 안전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실 확인을 위해 인도네시아 군의 도움을 받아 이날 밤늦게라도 팔루로 들어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마카사르와 팔루는 약 830㎞가량 떨어져 있으며 현재 외부 구조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주요 루트다.

◇경보실패가 부른 대량 인명피해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이 지진인지 쓰나미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인명 피해의 상당 부분은 당국의 예보 실패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상륙 당시 해안가 가옥들을 통째로 삼키는 위력을 냈지만 인도네시아 기상기후지질청(BMKG)은 강진 직후 발령했던 쓰나미 경보를 해제했다. 트위터 한 이용자(@zanoguccy)는 BMKG에 “쓰나미가 발생했지만 경고가 해제되었다”며 분통을 표시했다. 현지 언론들도 BMKG가 경보를 해제한 시점과 쓰나미가 몰려온 시점의 전후 관계가 불명확하다면서도 BMKG가 치밀한 조수 관측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BMKG 관계자는 “조수 감지기는 단지 6㎝ 높이의 파도만 감지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쓰나미 피해가 컸던 협만 안쪽의 팔루(동영상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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