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침’ 빠진 종전선언, 2차 북미회담 결과물에 슬쩍 넣을 수도

입력
2018.09.27 20:00
수정
2018.09.27 20:55
5면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뉴욕 파커 호텔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뉴욕 파커 호텔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향후 남ㆍ북ㆍ미 간에 논의될 종전선언의 밑그림도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일단 문 대통령 발언은 그 동안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던 ‘낮은 수준의’ 종전선언과 일맥상통한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처음 이런 방안이 논의된 것은, 교착 상태에 있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의 무게감을 낮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우리 측은 미국의 비핵화 요구 수위를 핵물질 생산 시설, 즉 ‘현재 핵’ 폐기 정도로 낮추되 반대급부인 종전선언도 약식으로 만드는 중재안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소 가능한 종전선언’이라는 문 대통령의 언급으로 미뤄볼 때,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의 성격에 충실할 가능성이 크다. 당사국 지도자들이 과거에 벌어졌던 전쟁의 종식을 정치적으로 공표하는 행위일 뿐, 평화협정에 담기는 ‘불가침’, 즉 더 이상 어떠한 군사적 침략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아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상 평화협정문은 1조에 ‘전쟁의 종식을 선언한다’는 내용이, 2조에 불가침 조약이 담긴다”며 “한반도의 특수 상황 상 종전선언을 분리해 앞당겨 하다 보니 국제법적으로는 불가침에 대한 구속력이 약한 문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종전선언에 좀 더 진전된 내용을 담는다고 해도 ‘군사적 신뢰 구축’을 명시하는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불가침보다 수위가 낮은 표현으로 (판문점선언에 포함된) 군사적 신뢰 구축 정도를 적시할 수 있다”며 “이 밖에 주한미군과 유엔군사령부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부속조항으로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정전협정을 유효하게 준수한다’는 내용을 넣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종전선언의 무게감이 한층 줄어들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물에 종전선언 내용이 담길 가능성도 거론된다. 당초 계획대로 남ㆍ북ㆍ미 또는 남ㆍ북ㆍ미ㆍ중이 별도 회담을 열고 종전선언을 채택하는 수순을 밟는 대신 북미 회담 합의문에 종전선언 조항을 슬쩍 넣어 기정사실화한다는 구상이다. 최소 “한국전쟁의 종식을 선언한다”는 문구만 들어간다면 종전선언이 성립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문제는 없다. 조한범 위원은 “남북이 이미 종전선언에 가까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북미 간 선언만 있어도 남ㆍ북ㆍ미 3자 구도는 완성된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을 남북과 북미 간 투 트랙으로 나눠 가볍게 만드는 방식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해소하는 동시에 북미 간 종전선언으로 비핵화 협상이 순풍을 탄다면 오히려 속도감 있게 평화협정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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