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 담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기하겠다고 해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장기 법적 분쟁의 가능성이 큰 데다가, 미국 기업들과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IRA에 찬성하고 있어서다.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는 28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인 IRA 집행을 철회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간단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2022년 8월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행된 IRA는 총 4,370억 달러(약 606조 원)를 세액공제나 정부 보조금 형태로 청정에너지 산업 육성과 기후변화 대응 등에 쓴다는 계획이다. 한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 등이 IRA 수혜 대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재집권 시 IRA를 폐기할 것이라고 시사해 왔다. 그는 지난달 5일 뉴욕 이코노미클럽 연설에서 "내 계획은 '신종 녹색 사기'(Green New Scam)라 불리는 그린 뉴딜 정책을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했고, 8월에는 로이터통신에 "(IRA의) 세액공제와 세금 인센티브는 일반적으로 그리 좋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호언장담에도 IRA 폐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액시오스의 전망이다. 우선 IRA 시행 규칙을 수정하려 할 경우 장기간의 법정 다툼이 예상된다.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시행이 재무부 소관인 까닭에 행정부에서 규정을 변경한다 해도 장기 소송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출과 보조금 지원의 경우 이미 지급됐거나 지급 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현재까지 925억 달러의 보조금이 지급됐는데, 이는 2024 회계연도에 책정된 자금의 약 80%에 해당한다.
의회의 협조도 필요하다. 1974년에 제정된 의회 지출유보통제법(ICA)에 따르면 대통령은 일정 기간 예산 집행을 보류하거나 의회에 예산 무효화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념적인 이유로 의회가 책정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금지돼 있다.
IRA에 대한 기업들의 긍정적 인식도 트럼프에겐 걸림돌이다. 6일 미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당초 IRA에 반대했던 엑슨모빌·옥시덴탈 등 석유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폐지 반대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IRA가 저탄소 에너지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의 세금 공제 혜택을 지원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이달 초 "올해 IRA로 8억 달러의 혜택이 예상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IRA를 찬성하고 있는 분위기다. 공화당 의원들은 IRA 표결 당시 아무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지만, 현재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지역구에서 IRA 혜택을 더 보고 있다고 액시오스는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공화당 하원 지역구에 투입되는 IRA 자금은 1,610억 달러로, 민주당 지역구(420억 달러)의 약 4배에 달한다. 실제로 공화당 하원의원 18명은 지난 8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IRA의 에너지 세액공제 유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