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석인데 아직 냉면집 문전성시… 대한민국은 여전히 피서 중 [늦더위 현장]

입력
2024.09.13 12:00
사상 첫 9월 폭염경보... 30도 육박 열대야
무더운 야간 개장 첫날, 물가서 더위 식혀
여름 별미식 인기 여전 "추석 후에도 팔 듯"


“날씨가 미쳤나 봐, 가을이 없어지려는 건가 싶어요.”

폭염경보가 떨어진 11일 저녁 7시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만난 임수용(48)씨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해가 진 뒤였지만 체감온도는 31.9도(기온 29.1도), 습도는 85%에 육박했다. 야외인데도 식물원 온실에 들어온 듯 공기는 덥고 끈끈했다. 9월 중순이 무색할 만큼 고온다습한 날씨에 "휴대용 선풍기는 출근 필수품이 됐다"고 임씨는 한숨을 쉬었다.

추석 연휴가 곧 시작되지만 서울 날씨는 한여름을 연상케 한다. 낮엔 폭염, 밤에는 열대야가 이어지며 시원한 물가를 찾거나, 콩국수 등 여름 별미를 즐겨 먹는 시민들이 적잖다.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라도 식히기 위한 이른바 '도심 속 피서'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선함은 어디 가고...늦더위에 땀 뻘뻘

이날 서울에는 관측 사상 처음으로 9월에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하루 최고 온도가 35도까지 치솟았고, 해가 떨어지고도 30도를 넘었다. 유례없는 더위에 경복궁 야간 개장은 지난해보다 열흘 미뤄졌는데 첫날 이곳을 찾은 대부분 관람객들의 손엔 얼음 음료가 들려 있었다. 고궁을 즐기기 위해 한복을 빌려 입은 이들의 얼굴에선 '괜한 선택을 했다'는 후회의 표정이 읽혔다. 경복궁 입장을 위해 긴팔 저고리와 두 겹의 치마를 착용한 기자의 등 뒤로도 10분 만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관악구에서 온 김동식(30)씨는 "경복궁을 낭만 있게 구경하려 (한복을) 대여했는데, 열대야에 긴팔을 입고 걷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며 숨을 몰아 쉬었다. 일행인 유현종(29)씨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워서 오래 머물면서 사진을 찍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야간개장 첫날 예매에 성공했다는 박주연(21)씨는 "손꼽아 기다렸는데 밤 무더위에 한복을 빌리려는 계획을 취소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여름 피서 명소'는 여전히 문전성시였다. 청계천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보거나, 다리 밑 돌계단에서 더위를 식히려는 시민들로 붐볐다. 직장인 이연주(31)씨는 "(도심에서) 그나마 물가가 시원한 장소라 왔다"며 "작년 이맘때엔 선선한 바람 맞으며 저녁 산책을 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오후 7시 30분이면 분수쇼가 열리는 반포한강공원에도 400여 명이 몰렸다. 대부분 민소매, 반바지 등 가벼운 차림으로 강바람에 열기를 식히며 공연을 즐겼다.

9월 중순에도 여름 별미 '북적'

시원한 여름철 음식도 아직 호황이다. 비가 내려 더위가 다소 꺾인 12일 점심 시간, 종로구 한 냉면집은 자리 30여 석이 전부 찼다. 9월 중순인데도 손님이 밀려오자 짐을 쌓아둔 카운터 옆 테이블을 치워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강남역 인근 한 냉면집에도 대기만 10여 명이 몰렸는데, 더위를 식히려 중형 선풍기를 통째로 들고 온 이도 있었다. 이 가게 사장인 김모씨는 "평년보다 손님이 30%는 많다"며 "날씨가 더워진 게 체감이 된다"고 했다.

콩국수를 찾는 이들도 꾸준하다. 탑골공원 부근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김모(43)씨는 "이맘때 콩국수 찾는 사람이 하루 1, 2명 될까 말까인데 올해는 못해도 20건씩 주문이 들어온다"며 "이 날씨대로라면 추석 연휴 후에도 콩국수를 팔 것 같다"고 미소지었다. 빙수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사장도 "이례적인 더위 때문에 올해 9월 매출은 전년보다 10%는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유진 기자
오세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