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가 송구하다는 '정권 권익위'... 스스로 돌아보길

입력
2024.08.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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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국장급 고위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메모 형식의 짧은 유서에는 구체적 내용 없이 심신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용만 담겼지만, 지인에게 명품백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것을 두고 죄책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제 오전 숨진 채 발견된 권익위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는 청탁금지법을 총괄하며 청렴∙부패∙채용비리 관련 조사 실무를 지휘해왔다. 최근 김 여사 명품백 수수는 물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응급헬기 이송 등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다뤄왔다. 그 자체만으로도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다.

그는 특히 지인에게 김 여사 사건 종결 처리와 관련해 힘든 심정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고 한다. 한 지인은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6월 말 술을 마시다 전화를 해서 ‘양심에 좀 그렇다. 결정 그렇게 해서 송구스럽다’고 하더라”며 “’(종결 처리가) 권익위 직원들의 전반적 생각과 다르다’고도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숨지기 며칠 전 그와 주고받은 문자에도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하다’, ‘심리적으로 힘들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파편적 증언만으로 예단할 순 없지만, 권익위 스스로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임은 분명하다. 6월 초 권익위의 무책임한 결정은 여론으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6개월을 끌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했을 뿐, 명품 가방 수수의 직무관련성이나 신고 여부 등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았다. 알선수재 등 다른 법 적용 여부도 따지지 않았다. 실무 책임자로서 직접 결정 권한이 없어도 권력 눈치보기라는 쏟아지는 비판에 자괴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권익위는 과거에도 ‘정권권익위’ 등의 오명을 써왔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에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의혹 검찰 수사와 장관 직무는 관련이 없다고 결정해 뭇매를 맞았다. 반부패총괄기구라면 여타 다른 조직보다 훨씬 더 직원들이 양심과 상식에 따라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당연하다. 야당이 나서서 답 없는 정치 공방으로 비화하기 앞서 권익위 스스로 의사 결정 과정에 부당함이 없었는지 낱낱이 진상 규명에 나서기 바란다. 그게 추락한 조직 위상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고인을 예우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