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에 70억 물린 모바일 쿠폰 업체 대표의 절규… "4% 대출이 동아줄 되긴 힘들죠"

입력
2024.08.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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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쿠폰업체 대표 인터뷰]
티몬 상품권 미정산 대금 70억 원
커피·외식 가맹점에 정산 못 해줘
영업 중단하고, 직원 절반 해고
‘30억 대출’ 정부 지원 역부족
“지급불능 시 수많은 가맹점 피해”


7월 18일. 모바일 쿠폰업체 대표 A씨는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의 회사는 커피전문점이나 외식 프랜차이즈, 편의점 등에서 쓸 수 있는 모바일 상품권을 발행한다. 이날은 티몬서 판매한 상품권 판매대금 5억 원이 정산되는 날. 이 돈을 받아야 회사도 수수료(약 1%)를 떼고 상품권을 받은 가게에 보내줄 수 있었다. 그런데 계좌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티몬 측은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다음 정산 날에도 7억 원은 오지 않았다. 5억, 7억, 10억 원… 티몬에서 받지 못한 대금이 쌓여갔다. 7월 말 기준 70억 원이었다.

A씨는 본사·가맹점을 돌며 "빨리 해결하겠다"며 정산을 늦춰달라 통사정했다. 여의치 않으면 카카오·지마켓 등 다른 플랫폼에서 들어오는 상품권 판매 대금을 당겨쓰는 식으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티몬에선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플랫폼 정산도 줄줄이 꼬여갔다. 회사 자금도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그는 최근 상품권 발행·판매 업무를 사실상 중단하고, 직원도 절반 이상 줄였다. 불과 2주 만에 업력(業歷) 20년 이상 기업이 부도 위기에 처한 것이다.

A씨는 6일 한국일보와 만나 "언제 무너질지 몰라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며 "우리 회사가 지급 불능을 선언하면 미정산 대금 70억 원은 수많은 가맹점주가 떠안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4% 금리로 최대 30억 원을 티몬·위메프 판매자(셀러)에게 빌려주는 정부 대책에 대해 "소규모 셀러라면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는 아니다"라며 "연쇄 도산을 막으려면 파격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사태 이후 상품권 업체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처음이다.


티몬의 솔깃한 상품권 제안


A씨 회사가 티몬에서 유통하는 상품권이 많아지기 시작한 건 2월이다. 당시 두 회사는 '상품권 비즈니스 활성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후 티몬은 '박리다매' 상품권 판매를 제안했다. 가령 A씨 회사가 커피·외식 등 프랜차이즈 본사 대신 상품권을 발행해주고 각 가맹점 포스기에 관련 시스템을 깔아주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가 상품권 발행가의 6%. 여기서 플랫폼 수수료 5%를 내고 남는 1%가 매출이었다. 그런데 티몬은 플랫폼 수수료 5.4~5.5%를 제시하며 "대신 엄청난 물량을 팔아드리겠다"고 제안했다.

사실 상품권 수요는 충분했다. 고물가·저성장 장기화, 비대면 선물 문화 확산 등에 따라 2020년 4조4,952억 원 수준이던 전자상품권 거래 규모는 2023년 10조649억 원으로 3년 만에 두 배가 됐다. KT알파, 쿠프마케팅 등의 업체가 상당한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고 A씨 회사를 비롯한 몇몇 업체가 중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A씨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상품권 수요는 워낙 많았고 우리는 수익을 낼 수 있기에 나쁠 게 없었다"고 했다.



티몬은 이렇게 확보한 상품권에 자체 프로모션과 카드사 할인 등을 결합, 시가보다 훨씬 싸게 팔았다. '상테크(상품권+재테크)족'이 몰려들었다. 적자를 보더라도 거래액을 늘려 기업가치를 높이는 게 이커머스의 성공 방정식이었기에 A씨는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사태 직전에는 티몬이 최대 매출처가 될 정도로 상품권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는 "직원이 500명이 넘고, 이커머스 업력 10년이 넘는 티몬이 돈을 안 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돌이켜 보면 우리도 무리하게 상품권을 판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랬던 만큼 티몬발(發) 거품이 터졌을 때 회사가 받은 충격도 컸다.

사태 직후 A씨는 부랴부랴 쓰지 않은 상품권을 취소부터 했다. 소비자에게 티몬에서 환불을 받으라고 사실상 리스크를 떠넘긴 셈이다. 그는 "일부 고객에게 미안하지만 미정산 금액을 1,000만 원이라도 줄여야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다만 이렇게 소비자 반발을 무릅쓰고 정산 부담을 없앨 수 있는 '미사용' 상품권은 전체 판매 물량 중 극히 일부였다고 한다. 대부분 상품권은 이미 사용돼 가맹점 정산 날이 계속 다가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70억 원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정부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


마지막 희망인 정부 대책도 갈증을 풀어주진 못했다. 6일 발표된 대책에는 정산 피해 업체에 연 3.9~4.5% 금리로 최대 30억 원까지 빌려주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50억 원 정도는 빌려줘야 본사·가맹점에 정산금 50%를 먼저 갚고 나머지도 해결하겠다고 설득할 수 있다"며 "상품권 유통 마진이 1%인데 금리가 4%면 대출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만약 A씨 회사 또한 해피머니 상품권 발행사처럼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 70억 원은 고스란히 프랜차이즈 본사·가맹점의 미수금이 된다는 게 그의 얘기다. A씨는 "정부 차원의 대출 지원이 없으면 연쇄적으로 업체들이 무너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박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