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극한 대치 끝에 두 차례 폐기된 채 상병 특검법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제3자 특검 추천' 같은 중재안을 검토해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단독 원안을 고수한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에 부딪혀 결국 사장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결국에는 끊어야 한다는 현실론적 주장이다. 국민의힘과 물밑협상으로 극적으로 통과시켰던 이태원 참사 특별법 때처럼 국회가 다시 한번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내대표를 지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 의원총회 비공개 회의에서 원내지도부를 향해 채 상병 특검법을 거론하며 "(법안의) 실제 관철을 위한 지혜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공개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 단독 통과 → 대통령 거부권 행사 → 재표결 부결 → 법안 폐기의 과정을 두 번이나 겪은 만큼, 이제는 힘 싸움보다 특검법을 실제 통과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박 의원은 이를 "지혜로운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강화된 특검법을 낸다는 당위적 주장만 했다가 또다시 공방을 벌이고, 도돌이표가 돼서 돌아오는 상황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라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 있을 정도의 접근"을 말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중재안을 거론했던 만큼,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치고 들어간다면 여권의 반대 명분이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는 '제3자 특검 추천' 모델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대안이 조심스레 거론된다. 한 대표가 띄운 중재안을 큰 틀에서 수용하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여당이 특검을 하자는데 민주당에 유리한 것 아니냐"고 하는 등 수용 필요성이 조금씩 언급되고 있다.
물론 한 대표의 중재안을 모두 받아들이는 데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한 대표가 콕 집어 예시로 든 '대법원장 추천안'까지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 의원 역시 "제3자 추천 대상으로 우리 내부가 동의할 만한 방안을 강구해보자는 것"이라 했다.
특검 추천권이 아닌 비토권을 활용하자는 방안도 거론되는 아이디어 중 하나다. 가령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제안한 '대한변협 추천안' 관련, 변협이 1차 후보군을 추천하되 야권이 비토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2차 후보군을 걸러내 추천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법안 발의 방식에 '협치'를 접목, 개혁신당 등을 참여시켜 공동발의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범야권의 대표성을 부여하자는 의도에서다.
선택은 당연히 지도부의 몫이다. 현재로선 이 같은 중재안이 받아들여질 여지는 크지가 않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방송4법에 대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압도적 찬성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발언하는 등 여전히 지도부의 분위기에 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 지도부는 이날 박 의원의 제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대안에 대한 검토를 마쳤고, 시기가 확정되는 대로 의원들께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