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42년 돌봄 서비스 분야 인력 부족이 최대 155만 명 규모에 달할 수 있어 외국인 노동자 도입과 최저임금 미적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오자 노동계에서 거센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지위로 '반값노동'이라고 불리는 국내 돌봄 종사자 처우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이주노동자 차별과 돌봄 서비스 시장화 부추기는 한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책기관인 한은이 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등 국내법과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협약 등 국제기준을 위반하는 반인권·시대착오적 연구를 추진한 것은 큰 문제"라며 "(보고서가 제시한 방안은) 노동시장과 돌봄 서비스 모두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회견에는 양대노총, 이주노조,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한은 보고서는 심각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돌봄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돌봄 노동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며,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최저임금보다 낮게 책정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반인권적"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돌봄 가치 재조명, 관련 산업 성장, 양질의 서비스 제공, 종사자 처우 개선,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하이로드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돌봄에 대한 공적 투자와 처우 개선이 있어야 인력 공급도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다.
논란은 지난 5일 한은이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2022년 기준 돌봄 서비스 종사자 수는 79만 명인데, 향후 초고령화와 맞벌이 부부 증가로 노인·간병·육아 등 돌봄 인력이 2032년 38만~71만 명, 2042년 61만~155만 명 부족해질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문제의식이다. 또 월평균 간병비(370만 원), 전일제 육아도우미 비용(264만 원)은 일반 가정에서 부담하기엔 과도한 액수라 '부담 완화' 방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은이 제시한 해법은 △외국인 노동자 도입 △최저임금 제도 우회다. 사용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가 일대일 사적 계약을 맺거나, 돌봄 분야에 한해 기본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별도 최저임금을 책정하면 이용자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 내국인 종사자의 처우 악화 우려에는 "교육 등을 통해 보다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유도해, 임금과 처우 측면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런 해법이 외국인 노동자 차별 대우에 더해, 돌봄 산업 전체를 '저임금 고착화' 구조로 몰고 갈 위험이 크다고 본다. 강석윤 한국노총 상임 부위원장은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순차적으로 내국인에게도 적용될 것"이라며 "안 그래도 노동 조건이 열악한 돌봄 노동자들이 더욱 저임금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연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돌봄 인력 부족은 (보고서 내용처럼) 저학력, 50~60대 돌봄 노동자 수 감소 때문이 아니라 저임금, 고용불안, 성희롱 문제 등을 비롯한 열악한 근로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