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라마단 휴전'이 사실상 무산됐다. 인질 석방 등을 둘러싸고 양측이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이슬람 최대 명절인 라마단을 앞두고 휴전은커녕, 유혈 충돌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관측마저 제기돼 긴장감은 더 고조되고 있다. 식량난 등 인도주의 위기가 날로 심화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의 신음과 절망도 커져만 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영국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0일 밤 예정된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시작을 앞두고 그간 기대를 모았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2차 휴전의 성사 가능성은 사라졌다. 라마단 전까지 휴전 협상 타결을 보려던 미국 등 중재국들의 총력전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날 선 책임 공방만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이날 "이스라엘은 간극을 좁히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중재자들과 계속 연락하고 있지만 하마스는 관심이 없다"며 "하마스가 라마단 기간 가자지구에 다시 불을 지피려고 한다"고 밝혔다. 협상 불발 책임을 하마스에 떠넘긴 것이다. 하마스도 '이스라엘이 영구적 휴전 및 이스라엘군 철수 등 휴전 조건을 거부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맞불을 놨다. 이스라엘과의 교전 의지도 거듭 내비쳤다.
국제사회는 라마단을 계기로 오히려 전투가 격화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서 매년 라마단 기간 중 무력 충돌이 벌어졌던 만큼, 전쟁 중인 올해 라마단을 맞는 긴장감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모두 성지로 여기는 알아크사 사원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작전명이 '알아크사 홍수'였을 정도로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곳이다.
중재국들은 마음이 급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랍 중재국들이 10일 회동을 갖고 라마단 시작에 맞춰 이틀간 교전을 중단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기존에 논의되던 '6주 휴전안'보다 크게 후퇴한 내용이긴 하나, 예루살렘 지역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실제 하마스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라마단 중 알아크사 모스크로의 집결을 촉구하며 "알아크사 홍수 확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마저도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보도된 미 MSNBC방송 인터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겨냥해 "이스라엘을 돕기보다 해치고 있다"고 직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휴전 협상 타결을 재차 촉구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외면하는 데 대해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의 '생존 위기'는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이 공중 투하한 구호 물품에 맞아 민간인이 사망하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8일 가자지구 북부 알샤티 캠프 난민촌에서 구호 물품을 매단 낙하산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바람에, 구호품 상자가 이를 기다리던 가자 주민들을 벼락처럼 덮친 것이다. 이로 인해 5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구호품 공중 투하는 위험한 방법'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런 방식은 국경 검문소의 보안 검사 등을 피할 수 있어 분쟁 지역에선 구호품을 공급할 가장 빠른 방법으로 통한다. 그러나 구호 단체들은 위험천만한 데다, 비용 대비 수송 물량도 적다는 점에서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고 주장해 왔다.
국제사회는 바닷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유럽 키프로스에서 먹거리 등 구호품 200톤을 실은 선박 '오픈암스호(號)'가 이르면 10일 15시간 거리의 가자지구를 향해 출항한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임시 항구를 건설할 것을 미군에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