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부품 업체 대표 이모(59)씨는 지난해 내국인 근로자 두 명이 회사를 나가면서 올해부터는 단순 노무가 가능한 외국인 근로자 네 명을 뽑으려 했다. 에어컨 부품 특성상 겨울이 지나면 주문량이 늘기 때문에 1월 중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 교육시킨 뒤 3, 4월부터는 생산 라인에 투입하려 했다. 이씨는 "정부가 올해 외국인 근로자 입국 목표를 역대 최대인 16만5,000명으로 잡았단 소식을 지난해에 들었다"며 "그때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들어오면 새해부터는 생산 라인을 부지런히 돌릴 생각에 들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신규 외국인 근로자 신청 공고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이씨는 "늦어도 지난해 12월 안에는 신규 신청을 받을 거라 믿었는데 새해 들어서도 소식이 없다"며 "내국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외국인 근로자 서너 명을 전제로 세웠던 생산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산업 현장 곳곳에서 모자란 인력을 채우기 위해 신규 단순 노무 외국인 근로자(E9 비자) 입국 목표를 2022년 6만9,000명에서 올해 16만5,000명으로 크게 늘린다고 했지만 정작 고용노동부가 입국 업무 담당자가 부족해 늘려달라고 한 요청을 행정안전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지 않아도 약 170명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현장 점검, 입국자 안내 등 발품을 팔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입국자 규모를 수만 명 늘리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 충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지만 이를 거절한 것.
게다가 올해 새 외국인 근로자 신청은 지난해보다 3개월 가까이 늦은 29일에야 시작했다. 충원도 없이 일정마저 밀리면서 중소기업계에서는 "정부가 공언한 외국인 근로자 16만5,000명 입국이 가능은 한 것이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주목해야 할 건 고용부가 처리 가능한 외국인 근로자 최대 입국자 수가 지난해 결과물인 '10만 명'이란 점이다. 이마저도 2023년 목표인 12만 명 중 2만 명을 채우지 못한 결과다. 밀린 2만 명은 뒤늦게 올해나 입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의 외국인 근로자 담당자가 전국에 170여 명뿐인 상황에서 담당자 한 명당 600명에 가까운 외국인 근로자 입국 행정을 처리했던 것이다. 심지어 올해 정부가 잡은 목표인 16만5,000명을 해내려면 한 명당 1,000명에 가깝게 맡아야 하는 실정이다.
한 지방 고용노동청 관계자는 "밀려드는 신청 서류를 검토해 결론을 내야 하니 담당자들은 야근을 밥 먹듯 할 수밖에 없었다"며 "문제는 이 업무가 단순 서류 검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숙사 등 시설을 직접 찾아가 살펴보고 인력 규모에 따라 처리 건수가 달라지는 구조"라는 점이다. 그는 이어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 업무 말고도 다른 업무까지 해야 해 현재로서는 지난해 업무량도 해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실제 외국인 근로자 담당자들은 입국 관련 업무 외에도 △외국인근로자 고용사업장 지도 점검 △외국인근로자 사망사고 관리 △외국인근로자 취업 기간 만료 사업장 관리 등 뒤따르는 업무들도 상당하다.
고용부는 지난해 행안부에 '두 자릿수 규모'의 인력 추가를 요청했지만 행안부가 "부처 내 인력 이동으로 대응하라"고 거절해 올해도 인력은 그대로다. 행안부 관계자는 "고용부는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늘고 있다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국내 체류 외국인 근로자 수가 적어지는 등 당시 담당자 수는 충분히 현장 대응이 가능했다"며 "고용부 내부에서 인력 재배치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충원 요청을 한 주된 이유로 법무부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 입국 목표치를 크게 높인 점을 들었는데 행안부가 과거를 기준으로 판단해 아쉽다는 반응이다. 실제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입국 목표는 2021년(5만2,000명), 2022년(6만9,000명)에는 7만 명도 안 됐지만 지난해부터 12만 명으로 올리더니 올해는 16만5,000명까지 늘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소화하지 못한 2만 명이 올해 1, 2월에 들어왔거나 올 예정이라 올해 일정도 늦어지고 있다. 올해 신규 외국인 근로자 1회차 신청 기간은 29일부터 2월 8일까지다. 신규 외국인 근로자 신청은 보통 1년에 4회 진행되는데 외국인 근로자를 연초에 들어오게 하려고 첫 번째 신청은 전년도 말에 받아왔다. 2023년 1회차 신청은 2022년 11월 13일부터였다. 올해는 이와 비교하면 3개월 가까이 늦어졌다.
그러자 1회차 신청 외국인 근로자들은 4, 5월이나 돼야 입국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현재 인력 규모와 절차상 외국인 근로자 신청 후 입국까지 석 달 정도 걸린다. 특히 비자 발급을 위한 '사증발급 확인서'도 지난해에 발급까지 55일이 걸리기도 해 현장에서는 넉 달은 각오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최종 입국 시기는 현지 사정에 달려 있어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꾸준히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한 스테인리스 파이프 업체 대표는 "대부분 제3세계에서 들어오니 현지 비자 발급 및 건강검진 일정이 밀리는 경우도 많다"며 "2월 초에 신청하면 빨라도 5월에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가 대부분일 텐데 우리같이 경험이 있는 업체들은 아예 인력이 필요한 때로부터 6개월 전에 신청할 정도"라고 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정부가 약속한 16만5,000명의 절반도 못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2회차 입국(7, 8월) 3회차 입국(10, 11월)도 밀려 4회차 입국은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1회차당 2만5,000명(4회차 총 10만 명)이 입국 가능한 건데 올해 3회차까지 해내더라도 7만5,000명 정도만 입국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최상목 경제부총리까지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16만5,000명에 추가 검토까지 가능하다고 했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선언"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어려움은 중소기업이 떠안게 됐다. 앞서 언급한 에어컨 부품 업체처럼 연초부터 인력을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되거나 기존 외국인 근로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적시에 채울 수 없는 경우다. 경남 창원시 한 자동차 부품 업체 대표 정모(54)씨는 "기존 외국인 근로자들이 서울 가까이 있는 업체로 가면서 항상 빈자리가 있다"며 "정부 계획대로 안 될 것 같은데 기존 인력으로 생산량을 맞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올해 1회차부터 3만5,000명을 받는 등 목표 달성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외국인 근로자 입국 관련 인력이 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올해 상반기 내에 행안부에 충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행안부도 "외국인 근로자 입국 목표치가 높아졌고 입국 규모가 늘어난다면 다시 판단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에 위치한 한 중소기업 대표 장모(60)씨는 "외국인 근로자 관련 기관들은 문의 전화를 받다 가는 일이 안 되니 아예 전화를 내려놓는 경우도 있다더라"며 "정부가 관련 인력을 늘려줘야 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