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석가모니 유골 모신 '스투파'에 깃든 남인도 미술의 정수

입력
2024.01.11 17:20
20면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서 4월 14일까지 전시

인도에서 '스투파(stūpa)'는 망자의 무덤이었다. 부처나 훌륭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의 의미를 갖게 된 건 기원전 3세기 무렵.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파하고자 인도 전역에 스투파를 세워 사리를 나눠 보관하면서다. 스투파를 장식하는 조각이 그 자체로 훌륭한 불교 미술 작품이자 인도 문명을 보여주는 보물이 된 배경이다.

2,000년 전 남인도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국내에 처음 상륙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특별전이다. 뉴델리국립박물관을 비롯한 인도 12개 기관과 영국, 독일, 미국 등 전 세계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97점으로 구성됐다. 비교적 최근인 21세기에 발굴돼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나온 적 없는 유물도 선보인다. 작품 절반 이상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 남인도에 세워진 스투파를 장식하던 조각이다.


풍요로운 남인도와 너그러운 불교가 만났을 때

무덤인 스투파는 남인도 미술에서 물이 샘솟고 생명이 자라는 공간으로 재창조됐다. 온난한 기후로 자원이 풍부하고 유럽, 동남아시아와의 국제 교역으로 번성했던 시대상이 스투파에 새겨졌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연꽃이 대표적이다. 스투파 울타리를 장식한 조각 '입에서 연꽃 넝쿨을 뿜어내는 자연의 정령'에는 여러 송이의 연꽃이 넝쿨을 이루며 끊임없이 이어진다. 생명이 씨앗을 맺고, 죽고, 다시 살아나 다시 씨앗을 맺는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보물을 쏟아내는 연꽃' 조각에는 거꾸로 매달린 연꽃에서 온갖 금은보화가 쏟아져 내리는데 그 자체로 풍요를 상징한다. 연꽃 모자를 쓴 배불뚝이 약샤(남인도인들은 숲속 정령이 풍요를 가져온다고 믿었는데 나무와 대지에 깃든 신의 남성형은 약샤, 여성형은 약시라 불렸다)의 머리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것은 다름 아닌 동전. 종교적 미술품과 세속의 상징인 돈의 결합이 익살스럽다. 조각된 인물의 유쾌한 표정과 포즈를 통해 남인도 사람들의 낙천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새로운 신앙이 자극한 남인도 미술의 상상력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였던 인도가 싹틔운 문화에 불교라는 새로운 신앙이 융합된 것이 지역 고유의 미술에 어떤 자극과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바르후트 스투파에서 발굴된 '사리함을 옮기는 코끼리'를 보자. 코끼리가 머리 위에 상자 모양의 물체를 얹고 걸어간다. 당시 코끼리는 신분 높은 사람만 탈 수 있는 동물이었던 만큼 석가모니의 사리함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인도 지역 스투파에서 출토된 사리 단지에서 꽃, 별 모양 보석이 나온 것은 당시 남인도 사람들이 얼마나 불교를 애지중지했는지 알 수 있다.

전시는 지난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문화사적으로 재해석해 공동주최한 것이다. 중앙박물관 관계자는 "한국 관람객들이 생명력 가득한 남인도 미술 세계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게 단장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4월 14일까지 이어진다.



이혜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