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아 "우울감, 질병이라 생각 안 하고 견뎌요" [인터뷰]

입력
2023.12.05 09:56
영화 '3일의 휴가'로 돌아온 배우 신민아

데뷔 25년 차 배우 신민아는 여전히 신비로움의 대명사로 꼽힌다. 연기 외적으로는 활동을 자제해 개인적 면모를 확인할 기회가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차분하고 정제된 언행과 은은한 미소가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신민아는 '말의 무게'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배우로서 예민하고 우울한 순간도 있지만 그는 "잘 견뎌냈고 지금도 견디며"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 4일 서울 모처 한 카페에서 만난 신민아는 1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결 밝고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새 영화 '3일의 휴가' 개봉을 앞둔 설렘과 긴장감도 느껴졌다. 오는 6일 개봉하는 '3일의 휴가'는 세상을 떠난 엄마가 하늘에서 3일간의 휴가를 받아 지상에 내려와 딸을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신민아는 명문대 교수였다가 시골집에서 백반 장사를 시작한 딸 진주 역을 맡아 열연한다.

극 중 진주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실제로 수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아픈 시간을 보낸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그렇다면 신민아는 어땠을까.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는 거 같거든요. 감기에 안 걸려본 사람이 없는 거처럼, 추운 날 열심히 일하면 감기 기운이 있듯이 어떤 일을 겪으면 우울한 감정이 자연스레 생기죠. 공황장애가 있는 진주를 연기해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캐릭터를 보고 (마음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누구나 많이 일어나잖아요. 힘들고 우울하다고 느낄 때 질병이라 생각 안 하고 당연한 거라 생각하면 견뎌지더라고요. 그렇게 살고 있고 노력하고 있어요. 우울한 마음이 들 땐 '당연히 아파해야 하는 시점이구나'라고 받아들여요."

지난 2020년 개봉한 '디바'에서도 주인공의 우울감을 연기했던 신민아는 공감하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저는 오히려 나이가 들고 조금 더 밝아진 거 같아요. 20대도 크게 우울한 건 아니었지만 그 감정은 계속 어렵진 않았던 거 같고요. 물론 연기는 힘들지만 공감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세월이 흐를수록 경험도 많을 테니까 30대가 20대보다는 더 그랬을 거고요. 저는 살기 위해 더 밝아진 거 같아요. 하하. 너무 예민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보니까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은 거죠."

애써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는 신민아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물었다.

"노력을 해야 해요. 스스로 괜찮다고 말해주고 깊게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요즘은 단순한 행동인데, 드라마를 계속 틀어놔요. 제 작품은 안 보고요. TV를 어른들이 왜 계속 보는지 알 거 같더라고요. 채널을 돌리면서 모든 걸 다 봐요. (감정에) 깊게 들어가지 않게, 벌어진 일을 깊게 안 살피려고 하죠. 그게 꽤 좋은 방법이더라고요."

늘 차분하고 조금은 느릿한 속도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신민아는 "인터뷰를 할 때도 그렇고 말의 무게들이 있다. 내가 하는 작업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행동이나 연기나 이런 게 실수하거나 민폐가 되지 않을까 긴장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결과에 대한 부담도 있을 거고 많은 사람과 함께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까진 아니어도 항상 신경을 쓰고 있는 작업인 거 같다"고 밝혔다.

진주가 백반집 사장인 만큼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신민아는 "칼질을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감독님이 칼질을 준비하라고 해서 무를 많이 썰었어요. 무가 굉장히 딱딱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잘 썰어질까 싶어서 무를 많이 썰어봤고, 스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손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햄을 숟가락 퍼서 넣는다던지, 집에서도 요리는 잘 안 하지만 간단한 거 할 때 그런 건 하니까요. 특별히 잘하는 요리는 없는데 스팸 김치찌개를 할 줄 알아요. 아, 그리고 저 김밥 잘 말아요. 엄마가 재료를 넣어주면 제가 마는 걸 하는데 진짜 잘 말아요. 하하."

연출을 맡은 육상효 감독은 신민아 특유의 분위기와 요란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니어서 좋다고 말한 바 있다. 신민아 역시 감독과의 작업은 좋은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감독님이 너무 좋았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감정도 잘 이야기하면서 촬영했다. 감독님이 배우와 가까이 있어서 현장이 더 좋았던 거 같다. 말투도 재밌고 웃긴 감독님"이라고 회상했다.

'로코퀸'으로 사랑받았던 신민아는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며 배우로서 안정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리고 있다. 아직도 그는 하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다.

"진짜 여러 장르와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이 일이라는 게 다 준비가 돼있어야 들어가는 거니까. 저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정해놓거나 선호하는 게 없었어요. 주어진 작품을 시기에 맞게 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결과물이) 여러 장르가 된 거 같아요. 깊은 감정을 표현할 때가 조금 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거 같긴 해요. 연기하는 재미는 둘 다 있어요."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진주를 연기한 신민아에게 배우의 삶에서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물었더니, "없다"라는 답변이 즉각 돌아왔다.

"후회하지 않는다기보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끝도 없이 돌아가고 싶을 거 같아요. 그래서 애써 지금만 생각하는 거 같네요. 만약 과거로 돌아가 다른 딸이 될 수 있다면요? 공부를 좀 잘하는 딸로 돌아가보고 싶어요. 하하. 일을 일찍 시작해서 공부의 재미보다는 연기를 하고 그랬는데 지금과 다른 삶을 산다면 제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의 모습도 어떨지 궁금해요."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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