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아빠 조폭"...학부모 폭행당한 인천 초등 교사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입력
2023.11.12 07:00
2021년 교실서 폭행당한 초등 교사
경찰조사와 소송 등으로 2년간 병가
사과 없이 공탁금 '감형 꼼수' 노려
"교권·교실 붕괴 막으려면 엄벌해야"

11년 차 교사인 30대 여성 A씨는 길을 가다 자주 숨이 막혀 주저앉는다. 뒤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에도, 집 앞 엘리베이터 센서등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나동그라지곤 한다. 그의 평온했던 일상이 불안과 공포로 바뀐 건 2년 전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한 뒤부터다. 지난해 3월 병가를 낸 그는 여전히 복직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를 폭행한 학부모와 소송 중인 그는 "학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법원이 가해 학부모를 엄벌해 어서 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학부모, "누가 우리 아들 신고했나" 교실에서 횡포

2021년 10월 A씨가 근무하던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싸운 게 발단이었다. 옆 반 아이가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A씨 반의 한 아이를 운동장에 눕히고 때렸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 중 20여 명이 117학교폭력신고센터에 신고했고, 교내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서 옆 반 아이의 폭행이 인정됐다. 이에 교육청의 2차 심의기구에서 이 학폭 문제를 다룬다는 사실이 2021년 11월 18일 가해 아이의 어머니 B씨에게 통보됐다. 이날 오후 B씨가 A씨 교실에 들이닥쳤다.

A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신고하라고 시켰다는 게 B씨 주장이었다. 지인 2명과 함께 온 B씨는 "넌 교사 자질도 없다" "경찰, 교육청, 교육부 장관한테 얘기해서 너 잘라버리겠다"며 폭언을 했다. A씨가 수업 중이라 면담할 수 없다고 하자, B씨는 A씨를 강제로 교실 밖으로 끌어내 목을 조르고 팔을 잡아당기는 등 폭행했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B씨는 "누가 우리 아들 신고했냐"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교사들의 제지로 폭행은 끝났지만 그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A씨는 "B씨가 교실로 오는 걸 보며 흉기를 들고온 건 아닌지, 술을 마신 건 아닌지 두려웠다"며 "아이들 앞에서 끌려 나가는 것도 모욕적이었지만, 끌려 나가면서 진짜 죽을 것 같아 무서웠다"고 말했다. A씨는 이후 공황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을 앓고 있다.


법정서 "아이 아빠가 조폭" 위협하기도

폭행이 끝이 아니었다. A씨는 교내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에서 교권 침해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교보위에 반발한 B씨는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B씨는 교육청에 민원도 넣었다. A씨는 "교육청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신고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오히려 B씨가 민원을 제기해 교육청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안 죽고 살았지' 싶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며 "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는 만에 하나 이 덫에서 못 빠져나와 불명예스럽게 교사라는 직업을 박탈당하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B씨의 끈질긴 이의제기로 A씨가 폭행 혐의를 벗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A씨는 여전히 B씨와 법정 다툼 중이다. B씨는 상해와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B씨는 법정에서 폭행 현장에 있던 아이들이 제출한 진술서를 모두 허위라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여러번 위협을 느꼈다. A씨는 "처음 증인으로 갔을 때 B씨 측 변호인이 '아이 아빠가 조폭인 걸 알고 폭력적인 아이로 몰고 갔느냐'라고 심문했다"며 "듣자마자 '협박인가. 왜 나한테 이런 정보를 주지'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불안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다음 재판에서 B씨 변호인은 "아이 아빠가 실형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홉 번의 재판이 이어지면서 A씨의 공포는 점점 커졌다. A씨는 "B씨의 퇴청을 요청한 후 법정 증언을 했는데, B씨 지인이 방청석에서 의자를 쿵쿵 차고, 계속 노려봤다"며 "무서워서 잠도 못 자고, 가족들을 위협할까 봐 불안했다"고 말했다. A씨는 아이들이 증언할 때는 방청객을 모두 퇴청하게 해 달라고 법정에 요구했다. B씨의 보복이 두려워 증언을 거부한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 중 일부는 폭행 당시 기억으로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극심한 불안감에 A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문의했다. 하지만 신변보호 조치를 받으면 B씨에게 ‘어느 지역 몇 ㎞ 반경에는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이 통보돼 오히려 그의 주거지가 드러나게 돼 이마저도 포기했다.

사과 없이 '감형 꼼수' 공탁금 걸어

A씨가 원하는 건 다시 교단에 서는 것이다. 폭행 이후 2년간 A씨의 삶은 망가졌다. 병원과 경찰, 법원만 오갔다. 수천만 원의 병원비와 소송 비용도 부담이다. 무엇보다 일상을 짓누르는 그날의 공포와 불안이 가시질 않는다. A씨는 "전화 벨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일상이 어려워 지금 상태로는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걱정된다"며 "사건이 빨리 마무리돼 회복해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B씨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이달 23일 열린다. 검찰은 폭행과 아동학대 혐의로 B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실형 위기에 B씨는 법원에 공탁금을 걸었다. 공탁은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기는 제도다. 피해자가 엄벌을 원해도 공탁금을 내면 감형되는 경우가 많아 '감형을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많다. B씨는 A씨와 아이들에게 사과는 하지 않았다.

A씨는 엄벌을 촉구했다. "저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줬기 때문에 B씨를 용서할 수 없어요. 교사를 폭행하는 학부모와 그 학부모의 자녀에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사법부가 엄벌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권뿐 아니라 교실 붕괴도 막을 수 있어요. 너무 힘들지만 제가 좋은 선례를 남겨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어요."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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