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업체 '맞춤형 입찰' 논란… 전북교육청 기막힌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

입력
2023.07.20 04:30
882억 원 규모 전북교육감 역점 사업
수 개월째 공회전 배경 들여다보니
노트북이 태블릿 PC 둔갑해 선정
요구 사양 L전자 생산 제품과 판박이
크롬북 원천 봉쇄…공개 입찰 맞나

서거석 전북교육감의 핵심 공약인 '에듀테크 교육환경 구축 사업'이 특정 업체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전북도교육청이 880억 여원이 소요된 사업에 대해 최근 L사 컨소시엄을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했는데, 선정 과정부터 평가까지 의혹투성이다. 사실상 특정 업체에서만 생산하는 노트북을 입찰 요건으로 지목해 타 업체의 참여를 원천 봉쇄했다는 지적과 함께 노트북이 태블릿 PC로 둔갑하는 등 선정 배경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

19일 전북도교육청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도내 초·중등 학생 1인당 1대의 태블릿 PC와 노트북을 무상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882억 원 규모의 '2023년 에듀테크 교육환경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757개 학교에 태블릿 PC 1만 7,122대와 노트북 4만 8,255대, 충전보관함 3,090대를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내년도 사업까지 합하면 사업비는 무려 2,000억 원대에 이른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사업을 추진할 업체를 선정하지 못해 수개월 째 진땀만 흘리고 있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교육청은 지난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K사와 L사, H사 등으로부터 사업(가격)제안서를 받았지만, 정작 H사는 제안요청서를 읽더니 '가망이 없다'며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후 5월 11일 조달청이 공개 입찰 공고를 내자 L사와 K사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맺으면서 단독 입찰해 무산됐다. 지난달 14일 재공고를 냈지만 역시 L사·K사 컨소시엄만이 단독 입찰해 무산됐고, 지난달 28일 3차 입찰엔 K사가 빠진 L사 컨소시엄과 A사가 응찰해 L사 컨소시엄이 1순위로 선정됐다. K사는 최근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 본사가 수사기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자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으며, A사는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조달청은 L사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고, 전북도교육청은 17일부터 기술 협상에 들어갔다.

반복된 유찰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는 "특정 기종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결론을 정해놓은 듯한’ 요건을 문제삼았다.

평가 배점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지적이다. 도교육청은 최근 3년 이내 유사 사업 수행 실적'에 6점, '중소기업 참여지분율'에 4점, '유사분야에서의 사업 노하우 및 기술의 우수성'에 4점을 부여했다. 이는 지역 중소기업의 참여를 원천 봉쇄할 뿐만 아니라, 그간 교육기기 보급 사업에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L사와 K사를 위한 배점이란 지적이다.

더욱이 도교육청은 태블릿 PC 보급 기종으로 네이버 웨일 OS를 사용하는 ‘웨일북’을 채택했는데, 현재 웨일북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는 L전자가 유일하다. L전자는 컨소시엄을 꾸려 나 홀로 입찰을 반복해 왔던 기업의 계열사다. 특히 도교육청이 스마트기기 선정 권장 기준으로 제시한 CPU, 디스플레이, 메모리, 저장용량, 해상도, 무선 규격, 카메라 화소 등 모든 요건은 L전자가 현재 생산 중인 웨일북과 완벽히 동일한 사양이다.

여기에 웨일북이 태블릿 PC로 분류된 것도 석연찮다. 국내 교육청 가운데 스마트기기 보급 요건으로 웨일북을 제시한 사례는 전북도교육청이 처음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7,13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태블릿 PC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고 스마트기기를 운용한 현장 교사를 중심으로 기종을 검토한 결과 태블릿 PC 기종으로 웨일북을 선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L전자가 생산 중인 웨일북은 국가기술표준원에 태블릿 PC가 아닌 노트북 컴퓨터로 인증받은 제품이어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에도 부합하지 않는 짜 맞추기식 엉터리 보급이란 지적이 나온다. 해당 예산은 태블릿 PC 구매 용도로 전북도의회 심의를 받았기 때문에 노트북 컴퓨터 구매에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터치가 되는 노트북도 태블릿 PC 일종'이라는 자체 해석을 통해, 이를 추진했다.

노트북 기준 역시 애매하다. 우선 OS를 '윈도우'로 못 박아 타 시·도 교육청에서 교육 기기로 주로 사용되는 크롬북의 참여를 원천 봉쇄했다. 또 CPU, 디스플레이, 무게, 메모리, 저장용량 등 모든 요건이 L전자가 현재 생산 중인 제품과 짜 맞춘 듯 일치한다. 사실상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두고 입찰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교조 전북지부는 최근 국민신문고에 입찰 담합 의혹 등을 제기하며, 공정 거래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신고서를 제출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사 및 학생에게 가장 친숙하고 범용적인 활용 환경 제공을 위해 크롬북이 아닌 윈도우 OS를 채택했다”며 “학생 교육용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은 기기 보급과 6년간 안정적 하자보수 과업이 결합된 사업으로 지역업체의 사업 참여를 권장하고자 컨소시엄 구성을 허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도교육청은 가격과 유지보수, 제품 관리 등 기술 사항에 대해 업체와 협상을 진행해 이달 중 최종 업체를 확정할 예정이다.

김진영 기자
박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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