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국적 만삭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확정받은 남편에게 보험금이 지급돼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새로운 주장과 쟁점이 나오지 않는 이상 보험사를 상대로 한 나머지 소송에서도 남편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모든 사건에서 승소가 확정되면 남편이 받을 보험금은 97억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달 19일 남편 A씨와 그의 딸이 새마을금고중앙회를 상대로 제기한 2억1,000만 원 상당의 공제금 지급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4년 8월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인근에서 아내 B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가 사망보험금 97억여 원을 타내기 위해 고의로 차량을 화물차에 부딪혀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를 살해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2021년 3월 "단호하게 진실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논리적 추론과 가능성의 우월함만으로 단죄할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B씨의 사망으로 A씨가 타낼 보험금 액수와 가입 경위 등을 살펴보면 고의 살인이 의심되긴 하지만, 검찰이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벌어질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범행 수법에 대해 "생명에 심각한 위험 요소가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건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살인에선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고, 살해 동기로 지목된 '사망보험금'에 대해 ①A씨가 재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악성 부채를 부담하고 있지 않았고 ②절박하게 돈을 조달해야 할 이유가 없는 점에 비춰보면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무죄가 확정되자 A씨가 보험사 12곳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지급 소송의 결론도 속속 나왔다. A씨는 하급심에서 8승 4패를 거뒀다. 캄보디아인 B씨의 보험 계약 이해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A씨 손을 들어준 재판부는 "B씨가 계약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자필로 서명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B씨가 국내 이슈 등에 대해 문답하는 귀화면접심사를 통과한 데다, "B씨가 한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보험모집인들의 증언이 근거였다. 반면 원고 패소 판결한 재판부는 "B씨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한국어로 의견을 나누고 명백한 의사를 밝힐 만큼 소통능력을 갖추진 못했다"며 "B씨가 모국어로 된 약관 등을 받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진정한 의사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이 이번에 A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패소했던 하급심 재판 결과도 뒤집힐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로운 주장과 쟁점이 나오지 않는 이상 최고 법원에서 같은 사건으로 상반된 결론을 내리긴 어렵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은 상고 이유의 적법성뿐 아니라 사건 내용을 들여다보고 결론을 내린다"며 "보험사가 승소하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A씨와 법정 다툼 중인 보험사 관계자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 성실하게 이행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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