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면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임대인에게는 무이자 대출을, 임차인에게는 월세 부담을 낮춰 준다는 효과도 있는 반면, 집값 변동성을 키우고 하락기엔 '깡통전세' 등 역효과가 현실화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171조7,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10년 전인 2012년 말 8조6,000억 원 대비 무려 20배가 불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약 2배(318조 원→ 637조 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10배나 빠른 것이다.
이처럼 전세대출 규모가 커질 수 있었던 데는 임대·임차인 모두에게 이득이 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상승기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에 근접할 경우, 임대인은 적은 돈으로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가 가능하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낮은 금액에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매매에 따른 가격변동성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전세사기에서 증명하듯 과도한 전세대출은 독으로 작용했다. 갭투자로 인한 과도한 가계부채는 거시경제의 부담이 됐고, 최근과 같은 전셋값 하락기엔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로 연결된다. 특히 전세대출이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을 통해 이뤄지고, 최대 보증비율이 100%여서 금융회사의 대출심사가 느슨해지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이렇다 보니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춘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전세 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과 정책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임대·임차인 간 상호이익이 일정 정도 훼손될 수 있지만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규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DSR 규제의 원칙은 '번 만큼만 빌릴 수 있다'지만, 전세대출은 계약 종료 후 임차인이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제외된 상태다. 이에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전세대출이 일부 갭투자 자금으로 활용되면서 주택가격 상승 및 주택시장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해 온 점을 비춰볼 때 대출 목적에 따라 DSR 규제 등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세대출 제도 개편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재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등 피해자들의 주거권 보장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