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에 매달려 가장 고통스럽게 처형된 히잡 시위자...이란의 '지옥도'

입력
2022.12.13 16:47
19면
공포 유발로 민주 시위 봉쇄하려는 의도
고문 의혹·불공정 재판…처형 후 유족에 통보
제재 비웃는 정부, 시위자 대거 처형 가능성

이란 정부가 '히잡 시위'에 참여한 남성을 도심 한복판에서 크레인에 매달아 교수형에 처했다. 제대로 된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예고 없이 집행한 공개 처형이었다. 처형 장면은 이란 언론에 생중계됐다. 이달 8일 시위 참여자를 처음으로 처형한 지 나흘 만이다.

공포를 조장해 반정부 시위를 봉쇄하겠다는 게 이란 정부의 노골적인 의도다. 시위 유혈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금돼 있는 최소 1만4,000명에 이르는 이란인들의 목숨이 더 위태로워졌다.

대도시 길거리에서 공개 처형…'시위대에 경고'

1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란 사법부는 이날 북동부 마슈하드 시내에서 마지드레자 라흐나바드를 공개 처형했다. 정부는 "반정부 시위에 참가해 보안군 2명을 살해하고 4명을 다치게 했다"는 혐의를 주장했다. 이란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 이후로 반정부 시위가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처형 방식은 잔혹했다. 라흐나바드는 손발이 묶이고 머리에 검은 봉지를 쓴 채로 공사용 크레인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했다. 질식하거나 목이 부러질 때까지 살아 있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방식이다. 이란 언론인 미잔통신은 그가 숨지는 과정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했다.

마슈하드는 이란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다. 이런 도심에서 공개 처형을 택한 건 시위대를 향한 경고의 의미가 크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공개 처형은) 이란 국민을 위협하고 반대 의견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란 지도부가 얼마나 국민을 두려워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라흐나바드가 고문을 당해 혐의를 억지로 인정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체포된 라흐나바드가 팔에 깁스를 한 모습이 이란 국영방송에 보도된 바 있다. 지난 8일 처형된 모셴 셰카리도 재판 당시 얼굴에 고문 흔적이 뚜렷했다.

라흐나바드에 대한 재판은 '보여주기'에 그쳤다. 그는 변호사를 선택하지도, 공개 재판을 요청하지도 못했다. 유족은 물론이고 본인도 사형 집행 계획을 당일 통보 받았다. 처형이 이뤄진 후에야 "'당신 아들을 죽였고, 공동묘지에 묻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유족들은 이란 민주화운동 단체 '1500타슈비르'에 전했다.

국제사회 비난 아랑곳 않는 이란…"제재 강도 높여야"

두 번째 사형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연합(EU)은 시위 강제 진압 등 인권 침해의 책임을 물어 이란인 20명과 기관 1곳을 추가 제재하겠다고 발표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우리는 (이란의) 젊은 여성들과 평화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시위대와 타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 공개 처형으로 사실상 국내외 압박을 무시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처형이 이뤄졌을 때도 미국과 한국 등 9개국 외교장관들이 공개 비판 성명을 내고 일부 국가는 제재를 발표했지만, 이란은 더 잔인한 방식의 처형으로 답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이란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의 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유엔 추산에 따르면 12일 기준 반정부 시위 참가와 관련해 이란인 2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약 1만4,000명이 구금돼 있다. 이란의 민주화 운동가 아미리 모가담은 "수천 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위대가 대규모로 처형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란 정부가 저지른) 범죄에 심각한 결과가 따라야 한다"고 호소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