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돈줄을 조이기 위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논의가 서방 국가 간 의견 차로 난항을 겪고 있다. 가격 상한제 시행일이 다음 달 5일로 코앞에 다가왔지만, 가격 상한선을 얼마로 둘지에 대해선 EU 회원국 간 입장이 갈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U 회원국들이 이달 안에 이견을 좁힐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지만, 최악의 경우 가격 상한제 시행이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 대사들은 이날 회의를 갖고 러시아산 유가 상한선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EU는 당초 유가 상한제를 주도한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이 제시한 배럴당 65~70달러 수준에서 상한액을 고려했다. 이는 현재 러시아산 원유 시장 거래가와 유사한 수준이다. 상한액이 시장가를 밑돌 경우 러시아가 아예 원유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러시아의 원유 공급 포기는 러시아 돈줄을 죄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세계 경제에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EU 내에선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상한선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노출됐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은 러시아에 실질적 타격을 주기 위해선 배럴당 20달러까지 상한선을 크게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폴란드 대사는 "배럴당 70달러 상한액에는 서명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고 WSJ은 전했다.
반면 몰타는 "70달러보다 낮은 상한액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스와 키프로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러시아 원유를 운송하는 유조선 대부분은 그리스의 소유다. 이들 중 일부는 상한제 시행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보상도 요구하고 있다. EU 회원국이지만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헝가리 역시 러시아 추가 제재에 대해 부정적이다.
EU는 24일(현지시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내달 5일 가격상한제 시행에 앞서 어떻게든 이견을 좁혀 보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의 압력에 중소국가들이 결국 고집을 꺾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U가 합의한 상한액을 넘어선 러시아산 원유는 해상 운송이 금지된다. 운송 보험과 선적 작업, 금융 등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가 가격 상한제에 동참하는 나라에는 "석유를 팔지 않겠다"고 경고한 상태라, 그리스, 몰타 등이 쉽게 주장을 철회할지는 미지수다. EU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격 상한제 시행 시기가 미뤄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