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범죄'에 찰떡궁합이다. 남편은 영화 '공조2'에서 살인하고, 아내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인주(김고은)의 얼굴과 배를 난타했다. 목소리를 낮게 깐 뒤 맨손으로 상대를 단숨에 제압하는 게 이 부부의 특기다.
폭력에 부창부수(夫唱婦隨)인 커플은 진선규(45)와 박보경(41). 9월부터 스크린(700만 관객 돌파)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넷플릭스 5주 연속 세계 톱10)로 공개된 부부의 악랄한 연기가 화제를 모으다 보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이 부부가 함께 악당으로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좀 제작해달라'(@nomo***)란 글까지 올라왔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은 박보경은 "두 아이 친구 엄마들과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보낸 '어머니!'란 카톡을 태어나서 가장 많이 받았다"며 "'아니 저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하면 '아뇨, 저 믿지 않을래요'라는 식으로 답을 주더라"라며 웃었다.
함께 악당으로 낙인찍힌 부부의 현실은 어떨까. "남편이랑 '우린 열심히밖에 없잖아'라며 '진짜 열심히 괴롭히고 때려보자'라고 했어요. 그래서 '촬영 잘 끝났어?'가 아니라 '열심히 때렸어?'라고 서로 물었죠. '아니, 열심히 맞았어'라고 하면 '잘했어' 해주고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늘 음모를 꾸미는 부부는 집에선 회개하기 바쁘다. 박보경은 "아이들이 TV로 '작은 아씨들'을 보곤 '엄마, 회개했어요? 라고 묻는다"며 "그럼 '가짜야, 가짜'라고 달래곤 한다"고 말했다.
박보경은 '작은 아씨들'에서 '신스틸러'였다. 박재상(엄기준)의 비서실장 고수임 역을 맡아 "폭력 앞에선 누구나 진실해진다"며 차가우면서도 광기 서린 연기로 긴장감을 줬다. 박보경과 '작은 아씨들'의 인연은 남달랐다. 비서실장 역엔 남자 배우가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정서경 작가가 여성으로 배역을 갑자기 바꾸면서 그는 올 초여름 뒤늦게 합류했다. 연극영화과 입시를 방불케 하는 오디션도 치렀다. 박보경은 "사전에 어떤 배역인지도 모르고 대본 없이 오디션장에 갔고 거기서 제공된 쪽대본을 5분 동안 읽은 뒤 즉흥적으로 인주를 때리는 장면을 연기했다"며 "끝나고 나니 김희원 감독이 '집에만 계시면 안 되겠네요'라고 해줘 힘이 됐다"고 말했다. 2011년 결혼 뒤 두 아이 육아로 경력이 한동안 뚝 끊겼지만 한예종 출신으로 20~30대 대학로에서 연극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유도소년' '나와 할아버지' 등을 무대에 올리며 연기를 다져놓은 덕분이었다.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최근 2년 동안 '킹덤' 시즌2를 비롯해 '괴물' '소년심판' 등 화제작에 줄줄이 출연했다. "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 오디션 제의 연락이 왔었죠. 극단 간다에서 올린 연극을 봤다고 하면서요. 그때 결국 '엄마 찬스'를 쓰고 다시 촬영장에 나갔죠."
이 부부의 집은 영화 '승리호'(2021) 출연 동료들의 사랑방이다. 박보경은 "남편이 허리 수술로 입원했을 때 김태리가 와 '오빠, 언니 힘들게 할 거야?'라고 농담하며 웃겨도 줬다"며 "송중기가 우리 아이에게 '삼촌이 안아줄게' 하니 아이가 '싫어'라고 해 '너희가 그렇게 막 대할 사람들이 아냐'라고 말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작품에서와 달리 이 부부의 실제 목소리는 나긋하다. 마음도 여려 둘 다 순두부 같다는 게 지인들의 얘기다. 극단 생활을 하다 결혼한 부부는 당시 둘의 월급을 합쳐 수입이 60만 원뿐이었다. 연기 외엔 많은 게 서툰 진선규는 박보경에게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였다. 긴 무명 시절을 거쳐 뒤늦게 차례로 빛을 보고 있는 부부는 요즘이 꿈만 같다. '작은 아씨들'을 끝낸 박보경은 제작비 600억 원이 투입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에서 "생활력 강한 서민"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젠 서로 대본을 같이 보며 '이거 했으면 좋겠다, 재미있겠다'고 얘기를 해요. 대본에 이름이 적힌 배역을 맡는 게 소원이었는데 감사한 일이죠. 케이트 블란쳇을 좋아해요. 장르에 상관없이 그 배우가 하면 다 '진짜' 같거든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