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사실혼 및 동거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바꿨다. 가족을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로 정의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최근 국회에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장애인 가정ㆍ이혼 가정 등에 대한 차별인식을 확대한다는 비판이 커 법안 명칭을 중립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도 철회했다.
여가부는 지난해 4월 ‘4차 건강가정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족 범위나 정의 규정 확대가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고 정책 사각지대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가족 개념 변경 없이도 다양한 가족에 대한 실질 지원이 가능하다며 입장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가족 개념 확대 분위기가 동성혼 합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부 종교계, 이에 동조적인 보수 여당의 눈치를 본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여가부의 행태는 비혼 동거, 사실혼, 노년 동거 증가 등 급변한 우리 사회 가족의 실태와 인식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심각한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 인정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에도 역행한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합계출산율(1.83명ㆍ2021년)을 기록, 인구 걱정을 하지 않는 프랑스 등 선진국은 혼인 부부뿐 아니라 동거 커플도 법적으로 인정하고 동일한 지원을 하는 보육지원 제도가 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혈연 중심의 기존 가족관계 변화를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혼인과 혈연 외에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면 가족이라 생각한다는 인식은 70%에 육박한다. 1인 가구가 40%를 넘고 가족이 아닌 친구나 연인끼리 거주하는 비(非)친족 가구원도 100만 명을 돌파했다. 더 이상 ‘정상 가정’ 개념에 매달려 협소한 가족 개념을 고수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 정권이 바뀐다고 변화한 가족 현실에 걸맞게 법적ㆍ정책적 지원을 선도해야 하는 여가부의 책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