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열 권 남짓 책을 파는 걸 보니 저는 책 파는 데 큰 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간혹 온 영혼을 다해 멋들어지게 책을 잘 팔기도 합니다. 인생 책을 발견했을 때, 주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멋진 책을 만났을 때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책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 특유의 말버릇이 마치 지문처럼 묻어나는 걸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고등학생 때 영어 선생님은 특정 단어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기자를 꿈꿨던 저는 맨 앞줄에 앉아 수업시간에 얼마나 그 단어가 반복되는지 확인하려고 '바를 정(正)'자로 기록해봤습니다. 50분 수업에 53회나 반복된 그 단어는 "알겠니?"였습니다. 문법 하나, 숙어 하나를 가르치면서도 잘 이해했는지 끊임없이 되묻던 다정하고 세심한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알겠니'라는 단어에 지금도 그 시절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 말은 선생님의 또 다른 지문이었던 셈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지문과도 같은 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모든 단어가 사라진다고 해도 꼭 남겨야 할 나만의 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 단어는 오랜 꿈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가치와 신념일 수도 있습니다. 뜨거운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고 다신 찾을 수 없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겠죠. 쉽진 않겠지만 고민 속에 내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입니다.
정혜윤 작가는 라디오 피디로서 오랜 기간 슬픈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힘깨나 쓰고 유명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우리의 이웃, 사회가 외면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죠. 그 안엔 각자의 가늠할 수 없는 삶의 무게와 서사, 오랜 고민과 성찰이 담백하게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여러 차례 책을 무릎에 얹고 먹먹해지는 마음을 추슬러야 할 겁니다. 그만큼 울림이 있습니다.
저희 책방의 모토는 '모든 삶은 시가 된다'입니다. 각자의 삶은 이야기이고 한 편의 시라는 의미죠. 이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 앞에는 언제나 언어와 이야기가 있어 왔다. 그러니 살아 있는 자의 심장에서 나온 살아 있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살아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고 말이죠. 각자의 삶과 고통은 개별적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감을 하고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는 단어와 이야기로 서로 연결된 존재니까요.
이 책의 참 매력은 결국 나의 이야기로 향한다는 점입니다.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 단어는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코로나와 경제위기, 전쟁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부조리함이 가득한 힘겨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따복따복 하루를 멋지게 살아갑니다. 각자 자신의 단어를 찾고 지키기 위해서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